[김재동의 변죽딴죽]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니 사극이라해서 역사의 잣대를 들이대긴 포기했다치자.
하지만 드라마의 잣대만큼은 맞춰야되지 않을까?
10회의 남사철(이승형) 자작극이 유감이다.

세종으로부터 세법확립을 위한 호구조사를 명받은 남사철이다.
하기싫다.
왜? 호구조사란게 언제건 자신이 포함된 기득권층의 권익을 침탈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으니까. 또한 ‘밀본’이란 정체불명의 집단이 임금의 신하들을 죽여나가는 정황이다. 애민하는 군주와 각세울 세력은 신권뿐이다. 그 권력이 임금알기도 우습게 여기는 판이니 임금말 성심껏 따르다간 어느 칼날에 죽을지도 모른다.
임금의 명을 거부할 명분이 없으니 답답한차에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걸로 하자. 그걸 빌미로 고사하자’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협박의 증거인 칼이 문제다. 왜 하필 한성 유일의 백정인 가리온(윤제문)의 칼을 굳이 썼을까? 가리온을 협박범이자 연쇄살인범으로 몰기위해서? 왜?
그 의도가 성공해서 가리온이 잡혔다.
‘자 인제 범인조차 잡혔네’ .. 그럼 안전해졌으니 임금의 명을 성심껏 봉행할 일만 남은 것 아닌가?
남사철로서는 범인이 잡히지않아야 임금의 명을 고사할 명분을 얻을텐데 도대체 무슨 맘으로 야밤에 집사를 반촌에 보내는 수고까지하면서 그렇게 뻔한 증거를 만든 것일까?
남사철 자작극은 10회라는 분량을 떠나서 대단히 중요한 드라마의 터닝포인트다.
실제로 ‘가리온이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다’ 라는 드라마 전반부 최대의 반전을 끌어내지 않았는가? 근데 이런 중요한 에피소드에서 도대체 개연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도 가정해보자.
남사철이 좌의정이자 의금부도제조인 이신적(안석환)의 수하다.
과거 밀본에 몸담았던 이신적으로선 조말생과 강채윤이 밀본을 추적하는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임금이 명한 연쇄살인이 아닌 별개의 사건을 만들어서 자신의 의금부가 밀본수사를 맡아보자. 그래서 조말생과 강채윤에 앞서 먼저 밀본을 발본색원, 자신의 흔적을 지워버리자. 그래서 남사철에게 자작극을 명했다? 충분히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냥 내가 맡는 걸로 합시다” 조말생의 한마디에 사건을 그렇게 넘겨줘? 명색이 좌의정에 의금부 도제조가? 자작극까지 꾸며 맡으려던 사건을?
그도 우습지만 어찌어찌 넘긴다더라도 여전히 “왜 가리온인가?”는 의문은 해결이 안된다.
이신적은 가리온이 잡힌후에야...
밀본이 안달 나 ‘가리온을 구하라’는 특명을 내린후에야 겨우 가리온이 밀본과 관련됐다는 사실을 알게되는데 말이다.
드라마의 톤도 문제다.
‘공포를 읽을줄 아느냐?’는 세종의 조언에 힘입어 남사철의 자작극임을 눈치챈 강채윤의 너스레 장면.
화공이 목격자라서 용모파기를 정확히 그려냈다는 말을 남사철에게 전하는 대목말이다.
전편을 일관되게 포커페이스의 카리스마를 유지해온 조말생까지 가담시킨 그 대목은 ‘이거 코미디였어?’ 싶게 엉뚱하다.
그 엉성한 속임수에 어수룩하게 말려든 남사철은 어떻고...
컴퓨터가 그려낸 몽타쥬를 들고나가도 몇트럭의 용의자를 잡아올판에 야밤의 목격자가 붓으로 그린 용모파기쯤 잡아떼면 그만인 것을...
게다가 소심덩어리 남사철이 기군망상일순 있지만 ‘칼만 훔친 죄’를 덮자고 사람을 죽여? 그것도 감히 임금이 직접 명한 수사관을 ? ...캐릭터조차 흔들린다.
‘이러니까 이런거야’식의 치밀한 추리기법을 내세워 잘 끌어온 드라마의 톤이 ‘이럴수도 있으니까 이렇다치고’ 수준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만 느낌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에 비견될만한 반전을 포함시킨 10화에서 말이다. 아이러니다.
이 모든 것이 잠깐의 흔들림이길 바란다.
그래서 가 웰메이드 사극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길 바란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런 흔들림이 쪽대본의 전조라면... 남은 14부가 애청자로서 너무 암담하다.
[극작가,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