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출신 기록원, 이젠 필요할 때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1.11.12 07: 14

야구장에는 두 종류의 판관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심판이죠. 심판들은 그라운드에서 스트라이크와 볼, 안타와 파울, 홈런과 2루타 등 야구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순간을 쪼개서 판정합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기록원입니다. 그라운드가 아닌 경기장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한 기록원은 안타와 실책을 판단합니다.
물론 경기 흐름에 전혀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라운드와 기록원은 완전히 분리되어 철저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기록위원의 순간적인 판단이 타자의 타율을 결정하고, 투수의 평균자책점을 결정합니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기록원의 기록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원의 결정에 따라 선수의 연봉이나 기록행진이 결정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습니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었죠. 지금은 은퇴한 모 선수가 자신의 타구가 안타가 아닌 실책으로 처리되자 분노한 나머지 기록실로 찾아가 문을 발로 차며 기물을 파손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 기록원과 선수의 경기 중 접촉은 엄하게 금지되고 처벌 규정도 강화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일은 간혹 벌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 바깥에서의 일인데요. 특히 FA를 앞두거나 FA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 기록원의 결정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옵션을 채우냐 못 채우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한 기록원은 "평소에는 안 그러던 선수가 FA 재계약만 앞두면 판정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그걸 그냥 실책 주면 어떡해요'라고 애교 섞인 항의를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심판의 판정과 기록원의 판정은 같은 듯 하면서 다릅니다. 심판은 찰나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자연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록원이 안타와 실책을 판단하는 기준은 '정상적인 수비로 처리할 수 있느냐'입니다. 이건 실제로 야구를 해 봐야 정확한 판정이 가능합니다. 한 기록원에 따르면 "단순히 직선타구가 글러브를 맞고 튕겨 나갔다고 실책을 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공의 속도, 각도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한 뒤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선수 출신 기록원은 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인이 실제로 공을 받아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14명의 한국야구위원회 공식 기록원 가운데 프로 선수출신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학생야구를 했던 기록원은 절반 가량, 나머지는 선수생활을 해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프로 선수들은 기록원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구단 프런트, 심판 등으로 진로를 모색한다고 하는데요.
베테랑 기록원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예전 학창시절 때 잠시 선수생활을 했다. 그 때 야구 제일 못 하는 애들이 주전자를 날랐고 그 다음이 기록을 했다. 그런 기억 때문에 기록원을 낮게 보나"라며 농담삼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 이 기록원은 "기록을 하는 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대우도 나쁘지 않다. 그렇기에 프로 선수출신 기록원이 어서 탄생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드러냈습니다.
프로 선수생활을 했던 기록원이 등장한다면 그의 선수 경험과 기록이 결합되어 야구의 역사가 더욱 충실해 질 것이라고 봅니다. 야구 인기가 높아지며 기록원에 대한 관심도 점점 올라가고 있으니 곧 선수출신 1호 기록원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신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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