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플라이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야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현수(24,두산 베어스)는 올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타격 10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08년 타격왕, 2009년 3위, 2010년 7위에 자리했지만 올해는 타율 3할1리(475타수 143안타)로 11위에 그쳤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지만 희생플라이 규정이 처음 생긴 이후 그 형태가 변하지 않았다면 김현수는 4년 연속 타격 10걸을 달성할 수 있었다. 희생플라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아웃이 없거나 1사일 때 야수가 타구를 플라이로 잡고, 그 순간 3루 주자(간혹 2루 주자)가 홈으로 뛰기 시작해 득점을 올려야 한다. 희생플라이의 핵심은 '홈을 밟아야한다'는 조항이다. 타구가 플라이로 잡혔을 때 주자가 홈을 밟아야만 희생플라이가 인정된다. 만약 외야플라이가 진루타(1루-2루, 2루-3루)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현재 야구 규정에서는 희생플라이로 인정되지 않고 타자는 타수가 늘어난다.

만약 타자가 플라이를 쳤을 때 주자가 홈을 밟지 않더라도 희생타로 인정된다면 어땠을까? 올 시즌 김현수는 희생플라이를 제외하고 '플라이 진루타'를 6개 기록했다. 6개의 진루타를 희생타로 가정하면 김현수의 올 시즌 타수는 475타수에서 469타수가 되며, 143안타를 기록했기에 타율은 3할5리로 뛰어오른다. 이 결과를 반영하면 김현수는 올 시즌 타격 9위에 랭크, 10위 진입이 가능했다.
번트는 주자가 진루에 성공하면 희생타로 인정, 타수를 세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플라이는 3루 주자가 홈을 밟아야만 희생타로 인정될까? 사실 한 때는 '플라이 진루타'도 희생타로 기록된 적이 있었다.
▲'파란만장' 희생플라이의 변천사
1845년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최초의 야구규칙을 창안한 이후 166년이 지난 현재까지 규칙은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야구에서 처음 '희생'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1889년이다. 당시에는 번트, 땅볼, 플라이 등 모든 상황에서 주자가 진루에 성공하면 '희생타'를 기록했다. 다만 타수에서는 제외하지 않아 타자는 타율에서 이득을 보지는 못했다.
1894년에는 희생번트에 한해 타수에서 제외시키기로 하며 처음으로 타자는 '희생'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받게 됐다. 그리고 1908년엔 현재의 규정과 같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은 플라이에 대해 희생플라이를 인정, 타수에서 제외했다. 이 규정은 1925년까지 바꾸지 않고 이어진다.
1926년, 희생플라이 규정이 완화되어 홈을 밟은 주자 뿐 아니라 진루에 성공한 모든 플라이에 대해 희생타를 인정, 타수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이때의 규정을 따라야 김현수의 타율은 3할5리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타자들이 타율에서 이득을 보게 되고, 급기야 1930년엔 메이저리그 평균 타율이 2할9푼에 육박하면서 1931년부터는 아예 희생플라이 규정을 삭제한다. 당시 메이저리그 통계를 보면 진루타를 희생플라이로 인정하던 1930년엔 내셔널리그 총 희생타는 1317개, 아메리칸리그는 1283개였지만 규정이 삭제된 이듬해는 각각 789개와 650개로 급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39년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온 경우에 한해서 희생플라이가 잠시 부활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전체 희생타가 또다시 폭등하자 바로 다음해 희생플라이를 삭제한다. 현재의 희생플라이 규정이 확정된 것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나서다. 당시 미국 야구계는 '공을 단순히 내야에 굴리기만 하는 번트는 희생타로 인정하면서 외야로 보내 점수를 올리는 플라이는 제외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라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1953년 희생플라이가 다시 야구 규칙에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왜 3루 주자가 들어와야만 희생타로 인정될까
똑같이 주자가 진루에 성공한다 해도 번트와 플라이에 따라 타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희생에 대한 고의성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주헌(42) 기록위원은 "번트의 경우는 타석에 들어섰을 때부터 희생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에 타수에서 제외하는 특혜를 준 것이다. 이후 야구 규칙이 바뀌어 기습 번트도 희생타로 인정하게 됐지만 기본적으로 번트는 '자기희생'이다"라며 "그렇지만 플라이는 진루를 목적으로 타격을 한 것이 아니기에 진루타 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희생타로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기록위원은 "다만 3루 주자가 홈을 밟은 경우에 한해 희생플라이를 인정한 까닭은 야구가 득점을 위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희생플라이는 타자가 아웃되며 득점을 올린 경우에 한해 주어지는 특혜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기록위원은 "야구 규칙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처음엔 볼 8개가 돼야 진루권이 주어지고 주자를 맞춰 아웃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환경에 따라 규칙은 살아 움직인다"면서 "일전에 한 야구 관계자가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 5개면 스트라이크 아웃을 주는 게 어떻겠냐'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웃으며 한 말이지만 언제 야구 규칙이 저렇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훗날 진루타 역시 희생플라이가 될 수도 있는 게 야구다"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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