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칫 2년 전 '한 지붕 두 가족' 잠실 라이벌팀의 선수가 될 뻔 했다. 4년 최대 28억원의 계약을 맺은 두산 베어스 승리 계투 정재훈(31)이 만약 2년 전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두산은 지난 16일 정재훈과 4년 간 계약금 8억원, 매년 연봉 3억5000만원, 매년 옵션 1억5000만원으로 최대 28억원에 이르는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었다. 계투 요원으로서 4년 최대 28억원은 지난 2003년 말 LG와 4년 30억원 계약을 맺은 진필중(당시 KIA)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대형 계약이다.
일각에서는 다소 많은 금액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정재훈은 2003년 데뷔 이후 구원왕 타이틀 1회(2005년), 홀드왕 타이틀 1회(2010년)를 차지하며 두산 투수진 요소요소를 지켰던 투수다. 데뷔 이래 줄곧 두산에서 활약한 정재훈은 통산 386경기 29승 32패 121세이브 39홀드 평균자책점 2.82를 기록했다.

프랜차이즈 투수로서 자격을 갖춘 정재훈이지만 그도 2년 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될 뻔 했다. 바로 LG와의 거래에 묶였던 것. 선수 본인 또한 들리는 소문을 통해 확인했던 이야기였다.
2009시즌 맷 랜들의 허리 부상으로 인해 김선우의 뒤를 잇는 2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던 정재훈. 그러나 정재훈은 그해 6월 14일 어깨 통증으로 인해 선발로서 13경기 4승 3패 평균자책점 5.23의 성적을 남기고 2군에 내려간 뒤 이후 롱릴리프 및 셋업맨으로 2년 반을 생활했다.
그 해 두산은 LG와 트레이드 협상을 논의했던 바 있다. 정재훈이 좌완 유망주 유희관(현 상무)과 함께 LG로 가고 우완 선발 심수창(현 넥센)이 두산 유니폼을 입는 시나리오였다. 그 해 5월 5일 어린이날 잠실 두산-LG전서 정재훈이 4⅔이닝 9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심수창이 7이닝 무실점투로 선발승을 수확, LG의 어린이날 6연패를 끊으며 두산에 임팩트를 주었던 바 있다.
2009시즌 5월까지 잘 나가다가 페이스가 떨어진 뒤 포수 조인성과의 언쟁으로 인해 불명예 시즌아웃되었던 심수창. 그리고 정재훈은 선발로서 좌충우돌한 뒤 계투 추격조로 돌아선 뒤 2010년 초반까지도 마땅한 보직을 얻지 못했던 때. 여기에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을 찌르는 제구력을 갖춘 신인 유희관이 포함된 트레이드. 그러나 세부적인 협상에서 이야기가 틀어지며 거래는 없던 일이 되었다.
만약 두산과 LG가 거래를 받아들였다면 두산은 심수창을 선발 요원으로, LG는 정재훈을 계투 요원으로 쓸 수 있었다. 트레이드 선상에 올랐던 정재훈과 유희관 또한 당시의 일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나 소속팀이 바뀔 수 있던 만큼 당시에는 선수 개개인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로 정재훈은 2010년 전지훈련까지도 정해진 보직이 없어 롱릴리프식 훈련을 했다. 2009년 26세이브를 올린 이용찬이 갑작스러운 갈비뼈 부상을 입자 "마무리로도 뛸 수 있다"라며 의욕을 비췄던 정재훈이다. 자기 자리를 찾아야 했기 때문.
'트레이드될 수 있었다'라는 위기감은 정재훈을 깨웠다. 마무리로도, 선발로도 매력을 잃는 듯 했던 정재훈은 2010년 63경기 8승 4패 2세이브 23홀드(1위)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하며 8개 구단 최고의 셋업맨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도 악전고투하며 2승 6패 8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했다. 어깨 부상이 있기는 했으나 팀은 정재훈이 어려운 상황에서 분전했다는 점을 잊지 않았다.
"구단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다. 변함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서 4년 후, 오늘 구단의 결정이 최상이었음을 증명하겠다". 2년 전 만해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팀을 떠날 뻔 했던 정재훈은 그렇게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었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