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욕심 없습니다. KEPCO가 흥행에 방해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춘삼 KEPCO 감독이 2011~2012 V리그 개막을 앞두고 꺼낸 얘기다. 그 당시만 해도 신 감독은 KEPCO가 만년 약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느라 바빴다. 지금껏 가장 성적이 좋았던 2010~2011 시즌(10승20패)에도 이긴 것보다 진 것이 딱 2배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한 달 여가 지난 시점에서 KEPCO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달라졌다. 이제 막 2라운드에 돌입한 시점에서 당당히 2위(5승2패)를 달리고 있다. 예년만 해도 일년 농사에 해당하던 5승을 수확했다. 지난 시즌 1, 2위팀인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에만 패했을 뿐, 다른 팀을 모두 압도하며 KEPCO의 변신을 예고했다.

KEPCO가 달라진 비결은 역시 신 감독의 발로 뛰는 전략에 있었다. 다른 팀에서는 빛나지 못했던 진흙 속의 진주들을 찾아내 KEPCO의 부족한 전력을 메웠다.
물론, 진주들을 빛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포지션 파괴였다. 올해 유력한 신인왕 후보인 서재덕은 레프트에서 라이트로 쉼없이 오가게 만들었고, 박성률과 조현욱은 센터에서 각각 라이트와 레프트로 이동시켰다. 대신 작년 신인왕 박준범을 센터로 이동시켰다. 김정석이라는 세터를 영입하면서 공격의 스피드도 올렸다. 이들을 따로 훈련시키기 위한 도구들도 신 감독 본인이 직접 구상했다. 배구장에 어울리지 않는 농구대가 한 구석에 설치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감한 도박도 있었다. 외국인 선수 안젤코 추크의 영입이었다. 안젤코는 과거 삼성화재에서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지만, 나이가 들어 어깨와 무릎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존재했다. 신 감독 역시 안젤코의 영입이 '도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렇기에 성공할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물도 크다고 말했다. 말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그리고 그 도박이 성공하면서 KEPCO는 그토록 원하던 해결사를 얻었다. 지난 16일 현대캐피탈 원정에서 창단 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것도 안젤코의 힘이었다. KEPCO는 안젤코가 홀로 40점을 기록한 데 힘입어 풀세트 접전 끝에 현대캐피탈을 꺾었다.
신 감독은 "KEPCO가 잘해야 배구가 발전하고 V리그 가 흥행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올해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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