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 정대현(33)이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MLB)에 과감한 도전장을 냈다.
정대현은 17일 원소속 구단 사무실을 방문, FA 협상을 중단하고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SK 구단도 정대현의 의사를 존중, 메이저리그 진출을 돕겠다고 나섰다.
미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신분조회 요청을 받은지 하루만이다. 전날 한국야구위원회(KBO)는 MLB 사무국으로부터 정대현에 대한 신분조회 요청을 받았으며 현재 FA 신분임을 확인시켜줬다.

경희대 재학시절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 두 차례의 미국전에서 호투를 펼치며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었던 정대현이다. 이후 SK에 입단한 정대현은 12년만에 꿈에 그리던 빅리그 무대 마운드를 눈앞에 두고 있다.
▲표준이 된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있었다. 박찬호를 비롯해 조진호,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류제국, 최희섭, 추신수 등이었다. 하지만 모두 한국프로야구(KBO)를 거치지 않고 아마추어 시절 곧바로 미국으로 진출한 경우였다. 이상훈과 구대성이 각각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으나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검증을 받은 후 이뤄진 경우였다.
그러나 정대현은 한국프로야구에서 곧바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성사될 경우 이 부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타이틀이 아니다. 모든 면에서 최초라는 점에서 'KBO에서 MLB로 진출한 선수'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계약기관과 몸값은 이어질 선수들의 바로미터로 작용할 예정이다. 이미 정대현은 "최소 2년 이상 원한다. 헐값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한 만큼 미국 구단들이 제시할 금액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당장 올해 포스팅 자격을 갖춰 내년이 될 수 있는 윤석민(KIA)을 비롯해 류현진(한화) 등에게도 정대현의 계약은 중요하다.
▲선발 아닌 기교파 불펜 투수
도전 자체가 의미가 있다. 그만큼 정대현의 도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많다. 선발이 아닌 불펜, 강속구 투수가 아닌 언더핸드 기교파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둘 수 있다.
경희대 재학시절이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정대현은 선발이었다. 미국전에만 두 번 나왔다. 예선에서 7이닝 무실점, 준결승전에서는 6⅓이닝 2실점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2001년 SK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해서는 달랐다. 올해까지 총 477경기 동안 32승(22패) 76홀드 99세이브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했지만 선발로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구속도 빠르지 않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배트 스피드를 고려, 보통 90마일(145km) 정도의 스피드를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정대현의 구속은 130km를 겨우 넘는다. 다양한 싱커와 커브를 던져 구속의 단점을 상쇄하고 있지만 분명 기교파 정대현의 미국 도전은 신선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국가대표
정대현이 빅리그 무대를 밟으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이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많은 아시아인이 밟는 무대지만 KBO서 직행한 첫 메이저리거라는 점은 매력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 있다. 차별적이거나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결국 스스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 기량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정대현을 통해 한국프로야구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대현이 잘하면 한국 야구의 격도 그만큼 올라갈 수 있다.

▲보직은 어디?
정대현이 맡게 될 보직은 무엇일까. 정대현은 미국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부터 불펜 요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7~8회 위기 순간 상대 중심 우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 릴리프에서 1이닝 내외를 책임질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이는 정대현도 마찬가지. 정대현은 해외 진출 시 선발 전환 가능성에 대해 "이제는 (불펜에) 길들여진 것 같다"면서 "해외로 나간다 하더라도 중간 투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볼을 많이 안보여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대현 없는 SK의 대안은 FA 영입 혹은 트레이드?
정대현의 메이저리그행은 곧 SK 마운드의 중심의 급격한 변화를 뜻하기도 한다. SK 마운드가 마무리 등 핵심 불펜으로 활약한 정대현 없이 2012시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결국 SK로서는 또 다른 FA 작은 이승호와 큰 이승호에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둘다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보겠다는 뜻을 내비친 상황이다. 이에 SK도 "FA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정대현의 해외진출은 상대적으로 SK를 FA에 뛰어들게 하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액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정재훈이 두산에 남으며 체결한 4년 28억원 FA 계약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대현이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어냈다.
또 FA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활발한 트레이드에 나설 수도 있다. 불펜진의 공백, 느려진 기동력, 거포 우타자 부재 등이 자체 진단 결과다. 정대현의 메이저리그행으로 SK가 더욱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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