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변죽딴죽] ‘형사가 주인공인데 책상 한번 안치네. 소리도 안지르고.’
OCN이 18일 시작한 드라마 을 본 첫 소감이다.
면면을 보건데 적어도 백도식역을 맡은 김상호만큼은 한번쯤 그러리라 기대했다.

그 기대가 깨져서 너무 반갑다.
‘감정의 폭주’란 도식화된 전형 하나 깼을 뿐인데 톤이 벌써 달라진다.
드라마 . 웰메이드다.
첫회에서부터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확 살아난다.
전의경들 일 시킬 때 빼고는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는 김상호는 그 보잘 것 없는 외양을 모두 던져 수사관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콜롬보가 낡은 트렌치코트 신경안쓰듯, 포와로가 달걀머리 의식않듯. 언제나 중요한 건 사건을 일사천리로 풀어내는 자신의 잿빛두뇌라는 확신을 전해준다.
남예리역 조안은 주눅 든 순둥이다. 심리학도답게 남 거짓말 다 알면서 제 손해 감수하고라도 모르는척 넘겨준다. 내숭이거나 답답이도 아니다. 진실에 대한 통찰력만큼 남에 대한 연민이 남다를 뿐이다.
여지훈역 주상욱의 캐릭터는 ‘성질 급한 워커홀릭’ 이다. 몇 년만에 만나는 부검의의 반가운 인사에 사체에 대한 소견을 묻는 것으로 답례한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고 시시콜콜 설명하길 싫어해서 주변, 특히 박민호역의 최우식을 힘들게 한다.
아마도 이들은 회를 거듭하며 부상될 개인사를 밝히면서 스스로의 캐릭터들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별순검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스토리 전개도 멋스럽다.
특수사건을 전담하자는 의도하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임의 차출되는 형식이 아니다. 각자 사건을 쫓다보니 우연찮게 한 자리에 모였을 뿐이다. 공조하며 서로를 인정하게 되고 그래서 한 팀이 된다.
화면다루는 것도 예술이다.
특히 피살현장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추락사 사건을 쫓아 상경한 정선경찰 백도식, 실종사건을 덤태기 쓴 조안이 비를 피하는 사이로 연쇄살인수법이 의심돼 투입된 여지훈이 탄 차가 지나간다. 커브를 돌면 바로 폴리스라인 쳐진 피살현장이 나오고... 이 모두를 한 화면에 담는다.
배경이 피살현장이고 보면 테이프 살인사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쌍둥이 자매 둘 포함 메인캐릭터를 모두 한 화면에 집어넣은 셈이다.
작가도 연출도 이 한 장면을 위해 무던히 골을 싸맸으리라 본다.
소제목을 삽입하며 시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식도 좋았다.
1화 테이프 살인사건은 밤12시부터 2시까지 장장 2시간에 걸쳐 방영됐다.
소파나 침대에 누워 시청하는 이들에게 소제목은 잠깐씩 졸음을 쫓아 줄 만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HOW(어떻게)?“라는 관점에서 보면 잘린 열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청테이프로 감쌀 수 있는 건지 의문이다.
엄청난 양의 약물로 통증은 참아냈더라도 특히 두마디중 한마디가 잘려나간 엄지손가락을 이용해서 테이프를 감고 자르고 뒷결박까지 스스로 지었다는 부분이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잘린 손가락들은 어디갔나?
멀찌감치 떨어진 화면속에서 자살자가 손가락들을 모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다해도 수사관들은 수사 초기부터 사라진 손가락의 행방을 우선시했어야 한다.
‘WHY?'라는 측면에서도 드는 의문이 있다.
동생은 왜 이 복잡다단한 사건을 벌였을까? 왜 굳이 엽기살인마의 피해자로 만들어 언니의 흔적을 지우려했을까? 언니등골에 빨대 꽂은 의붓오빠 자기 손으로 죽여주고 유서를 통해 그 사실 밝히면서 자신의 모든 것 언니에게 넘겨주면 미진했을까?
양부모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혹은 내가 깜빡 조느라 못봐서였을 수도 있다.
양부모가 건재해서 자신이 누리는 특혜를 언니에게 넘겨주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럼 언니를 자기화하는 훈련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되면 언니는 동생의 의중을 알수밖에 없었을텐데...
그럴 경우도 테이프 피살같은 이목끄는 사건을 모방할 필요가 있었을까?
췌장암말기의 호스테스가 자신 괴롭히던 의붓오빠 죽이고 사는게 괴로워 자살했다면 삽시간에 잦아들만한 사연인데...
자살자가 동영상을 남긴 이유도 납득되지 않는다. 혹시 모든게 밝혀져서 언니가 범인으로 몰릴까봐?
이 대목에서 한가지 여지훈의 오버. 차차 밝혀질 여지훈 본인 개인사와 연관있을지는 모르지만 언니는 그 끔찍한 장면을 정신차리고 목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끔찍하게 자살한 동생은 언니가 행복하길 빌었으니까.
이렇게 여타의 미진함은 있다지만 잘만든 드라마다.
긴장 풀 겨를없는 반전의 연속이 그렇고 그 반전의 파고를 감정 폭주없이 차분하게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의 성숙한 자세가 반갑다. 그리고 그 사건의 끝에 인간이 있다.
미드처럼 건조하지않게, 기존드라마처럼 질퍽하지않게 인간이 줄수있는 감동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이 지향했던 인간있는 추리물을 다시 보게 되어 이 반갑다.
[극작가, 칼럼니스트]osensta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