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팀내 FA 선수 가운데 조성환만을 잔류시키는데 그쳤다. 롯데는 15승 투수 장원준의 입대 속에 전력 누수가 불가피했다. 이 와중에 FA 자격을 얻은 붙박이 4번 타자(이대호)와 필승 계투 요원(임경완)까지 놓쳤으니 내년 시즌 전력 구상에 빨간 불이 켜질 수 밖에 없다. 채워도 모자랄 판에 놓쳤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대호는 롯데로부터 총액 100억원을 제시받았으나 더 큰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일본 무대 진출을 추진 중이다. 물론 자신의 목표가 있기에 안정보다 도전을 선택했지만은 이대호와의 이별은 이미 예상된 수순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구단과의 연봉조정 신청까지 가는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야구인은 이대호가 연봉 조정 신청에서 패한 뒤 "이대호는 더 큰 무언가를 얻게 됐다"고 했다. 이대호가 롯데를 떠나더라도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롯데의 FA 협상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대호만이 FA 대상 선수라는 이미지가 짙었다.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일관성있는 모습은 여전했다. 수 년 전부터 반복되던 협상 진통이 이번에도 이어졌다. 단순히 계약 조건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협상을 담당하는 실무자는 테이블에 앉아 구단 제시액을 공개하며 자신의 연봉을 운운했다고 한다. 그게 선수에게 할 말인가. 구단 직원과 FA 선수의 연봉은 같을 순 없다. 속된 말로 억울하면 공부 대신 운동을 했어야 했다.

모 선수는 "FA 대상 선수들의 협상 과정을 보면서 남의 일만이 아니다"고 했다. 이 선수는 "언젠가 FA 자격을 취득하면 그런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씁쓸함을 느꼈다"고 아쉬움을 삼켰다. 고참 선수와의 FA 협상을 앞두고 "미래 가치보다 팀 기여도를 높이 평가하겠다"던 구단 고위층의 발언은 그저 뻔한 선거 공약과 다를 바 없었다.

양승호 감독은 FA 우선 협상 기간 중 "확실히 좋은 FA 선수들이 많이 풀렸다. 하지만 일단은 팀내 FA 3인방인 이대호와 조성환, 임경완을 붙잡는게 우선"이라며 "이대호는 잔류한다고 생각하고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 조성환과 임경완 역시 잔류를 선언했지만 확실하게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마음 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혹시 했더니 역시였다.
진상봉 SK 운영팀장은 타 구단과의 협상이 가능한 20일에 일본 돗토리 재활 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는 임경완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임경완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한 SK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고 3년간 총액 11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시즌 도중 "임경완을 기용하지 마라"고 압력을 행사했던 롯데그룹 고위층의 잔인한 행태와는 대조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 감독의 우려는 현실이 돼버렸다. 임경완이 SK와 FA 계약을 체결한 뒤 양 감독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그는 "어젯밤 임경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냥 미안하다 하더라. 내가 무슨말을 하겠냐. 일단 가면 본인이 잘 해야지"라면서 "(임경완 공백을 묻자) 안그래도 지금 화난다. 잡아줘야 할 선수를 다 놓치니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성토했다.
"22일 2차 드래프트 이후나 돼야 답이 나올거 같다". 양 감독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듯 했다. 늘 그랬듯이 말로만 우승이다. 짠돌이 구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그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는 '롯데스럽다'는 수모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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