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미식 축구 선수인 로드 티드웰은 자신의 에이전트 맥과이어에게 "돈을 벌게 해달라(Show me the money)"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프로 스포츠는 돈이 가장 중요한 잣대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2011 한국프로야구 스트브리그는 말 그대로 열기가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선수들의 이적과 더불어 수십억이 넘는 금액이 오가며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하게 돌아갔다.
스타트는 '50억 사나이' 이택근(31, 넥센 히어로즈)이 끊었다. 이택근은 지난 20일 원소속 구단인 LG 트윈스와 우선 협상이 끝난 다음날 넥센과 4년 50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날인 지난 20일 송신영 역시 LG를 떠나 한화와 3년 13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잠시 잠잠했던 FA 시장은 22일 또 다시 요동쳤다. 지난 14년 동안 LG 유니폼만 입었던 포수 조인성이 역시 SK와 3년 19억원에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SK '작은' 이승호도 4년 24억원을 받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보통 원 소속팀을 떠나 팀을 옮겼다는 것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 받았다는 점, 이로 인해서 계약에 이르기까지 돈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스토브리그는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시간이었다.
먼저 지난 19일 이택근이 LG와의 협상이 중단되자 이장석 넥센 사장은 자정을 넘긴 12시 40분에 이택근을 만나 충분한 이야기를 듣고 30분 만에 계약 동의를 받아냈다.
이택근은 "합의는 30분 만에 이뤄졌다. 내가 요구했던 것보다 더 인정을 해주셨다.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해 주셨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이택근은 과거 현대 시절부터 함께한 넥센 관계자와 끈끈한 우정이 그의 FA 계약 선택에 있어서 한 가지 이유가 됐다.
송신영은 어땠나. 송신영은 LG와 협상 결렬 후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머리를 식히러 떠났다. 그러나 19일 자정을 갓 넘긴 20일 12시 01분에 전화 한 통화를 받고 마음이 넘어갔다. 당시 한화 이상군 운영팀장이 전화를 건 뒤 무려 3시간을 달려가 송신영을 만났고, 2시간 가까운 충분한 대화 덕분에 계약까지 이뤄졌다.
FA 계약은 아니지만 두산 베어스도 외국인투수 더스틴 니퍼트와 계약을 위해 김승영 사장과 김태룡 단장까지 미국으로 날아가 니퍼트의 집까지 방문했다. 미국 또는 일본 진출을 모색하며 계약을 미루던 니퍼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덕분에 니퍼트는 지난 21일 두산과 재계약 사인을 맺었다.
좋은 선수와 계약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각오는 한국, 미국, 일본 3국 프로야구단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지난 2003시즌을 마친 히로시마 카프 소속이던 외야수 가네모토 도모아키(43, 한신)는 FA 자격을 획득했다. 그러자 당시 한신 감독이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과 구마 슌지로 단장이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해 계약을 이끌어 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도 지난 2006년 왼손 거물타자 마쓰나카를 영입하기 위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직접 협상을 해서 계약했다.
'뱀직구' 임창용(35, 야쿠르트 스왈로스)도 지난 시즌 후 FA 자격을 획득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팀을 옮길 수 있었다. 야쿠르트보다 100억 정도 더 많은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창용은 동료 선수들과 감독까지도 야쿠르트에 남아 달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난해 이맘때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정확한 날짜는 2010년 11월 16일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좌완 특급 클리프 리(33)를 잡기 위해 척 그린버그 최고경영자, 놀란 라이언 사장, 존 대니얼스 단장이 직접 클리프 리의 자택을 방문했다.
클리프 리는 시즌 중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트레이드 되어온 뒤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비록 월드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에이스인 팀 린스컴에 밀렸지만 텍사스로서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클리프 리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이 뿐이 아니다. 뉴욕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도 텍사스가 방문하기 일주일 전에 클리프 리를 찾아가 만났다. 양키스라는 명문 구단 단장이 직접 선수 집에 찾아갔다는 사실은 엄청난 일이었다. 당시 이 두 구단의 뜨거운 움직임에 미국 언론들도 상당히 놀라며 큰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그러나 클리프 리가 양키스도 텍사스도 아닌 필라델피아와 계약하자 "충격적이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비록 계약에는 실패했지만 클리프 리는 양키스와 텍사스 모두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도 남았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돈보다 선수의 마음을 얻어낸 점이 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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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마음'이라며 LG를 떠난 이택근과 송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