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11.24 11: 48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신작 에세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이 자전적 에세이를 펴냈다. ‘언뜻’ 서정적 시인으로  포장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돌아보고 있는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가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교육운동가 도종환의 시적 기록이다. ‘접시꽃 당신’으로 대표되는 서정적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도록 곧은 시인, 따뜻하고 열정적인 선생님, 해직과 투옥을 겪으면서도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 동안 발표했던 시를 통해 자신의 삶 이야기를 풀어냈다. 고단했던 삶과 직결된 시들을 골라 소개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덧입혔다. 시인의 오랜 지기인 판화가 이철수의 채색그림은 가벼워야 할 에세이에 무게감과 진실성을 실었다.
이 책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던 날들, 교육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이야기, ‘접시꽃 당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처받고 힘들었던 시절, 아파서 숲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했던 시간들을 보여준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흔들리면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흔들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꽃 한 송이를 피우듯 그렇게 살았습니다.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만났습니다. 어떤 벽도 나보다 강하지 않은 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벽에서 살게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벽에서 시작하는 담쟁이. 원망만 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잎을 찾아가 손을 잡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는 담쟁이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고, 그것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많은 아픔의 시간을. 거기서 우러난 문학을. 나의 삶, 나의 시를.”
그는 살아온 인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를 통해, 삶과 시가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자신의 문학을 밀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좌절’이라고 토로한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절망과 오기, 그리고 시대에 대한 뼛속 깊은 문제의식이 그의 문학을 살찌우고 있었다.
“아내가 토혈을 한 것은 첫아이를 낳고 난 이듬해 봄이었다. 딸아이를 낳고 이상이 있다면서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든 살려야겠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서른 두 살이었던 그때, 젊디젊은 나이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몸에 성한 곳이 있으면 주고 가자고 했던 그녀. 아내는 눈을 다른 이에게 기증해달라고 하고는 낳은 지 넉 달 된 딸아이와, 세 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끼리 만나서 가난하게 살았던 그때. 나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돌처럼 자리 잡고 앉아 떠나지 않았다.”
아내를 잃는 지독한 슬픔도 도종환 문학의 밑거름이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대중적 정서와도 쉽게 잇대어졌고 이는 곧 대중성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 또한 그리 달갑지 않은 내색이다. ‘대중성에 영합한 저급한 문학으로 평가절하 되는’ 과정을 남의 얘기하듯이 기술하면서 평단의 성급한 판단에 조용히 항거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이렇듯 분명하다. “내가 울면서 쓰지 않는 시는 남들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서정적 시인으로 포장된 시인은 천생 교육 운동가였다. 해직교사들과 집회도 하고, 항의 방문도 하고, 행정소송도 하면서 날들을 꾸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 중에 창밖을 내다보다가 담쟁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은 담쟁이처럼 살기로 마음 먹었다.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담쟁이처럼 벽을 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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