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대 12.
1998년 서울 1차지명 우선권 가리기가 열렸던 1996년 11월 10일. OB(현 두산) 스카우트 팀은 환호했고 LG는 입맛만 다셨다. 당시에는 서울지역 1차지명권을 OB와 LG가 주사위놀음을 통해 결정했다. OB는 1990년대 LG에 7번 내리 졌지만 이때 주사위 2개를 3회 던진 결과 23대12로 이겨 우선 지명권을 얻어냈다. OB는 망설이지 않고 대학야구 최고의 거포 김동주(당시 고려대 3)을 지명했고 LG는 장타와 수비력을 겸비한 만능 포수 조인성(당시 연세대 3)을 선택했다.
이듬해 11월 김동주는 계약금 4억5천 만원, 조인성은 계약금 4억 2천만원에 각각 입단 계약을 마쳤다. 그리고 1998년부터 서울 두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의 전설이 시작됐다. 김동주는 빠르게 팀의 4번 타자로 자리잡으며 '우동수' 트리오를 이뤘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타자로 성장,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자신의 이름 석자를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시켰다. 조인성 역시 LG의 주전포수 자리를 곧바로 꿰차고 팀의 핵심 선수가 됐다. 비록 주사위에 의해 갈린 두 선수의 운명이었지만 모두 한 팀에서만 14시즌을 뛰며 자연스럽게 다른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 14년 간 프랜차이즈, 그러나
김동주와 조인성은 올 시즌을 마치고 각각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둘 다 팀에 무난히 잔류 할 것으로 예상됐다. 김동주가 7억 원, 조인성이 5억 원으로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연봉이 높았기 때문에 보상금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이제는 노장 반열에 접어들었기에 영입 의사를 보일 팀이 쉽게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산의 김동주, LG의 조인성'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FA 협상 전부터 팀 잔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두 선수의 말은 문답무용으로 느껴졌다.
그랬기에 조인성의 SK 이적 발표는 충격이었다. FA 우선협상기간 최종일이었던 19일까지 조인성과 LG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시장을 둘러본 뒤 LG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난 22일 SK는 조인성과 3년간 19억 원 규모의 계약에 합의했다는 발표를 했다. LG와 떼 놓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조인성의 이적 결정 자체도 놀라웠지만, 이후 공개된 LG와의 뒷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24일 OSEN과의 인터뷰에서 조인성은 "LG의 무성의한 태도에 FA들이 모두 떠났다"면서 "일부 코치들은 '총 맞았나, 인성이 데려가게'라는 말 까지 들었다"고 폭로했다. 이에 LG 구단측은 "LG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맞불을 놓은 상태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팀간 이동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되었던 이번 FA 시장이지만, 김동주가 우선협상기간을 넘길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약 기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두산은 2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김동주는 최소 3년 이상을 고집했다. 결국 김동주마저 시장에 나오게 됐고 생각지 못했던 강타자의 시장 출현에 타선 보강이 시급한 구단들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김동주가 고집하는 계약 기간과 높은 보상금(14억 원+20인 외 보상선수 1명 or 21억 원)이 걸림돌이었다. 한때 롯데, LG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두 구단 모두 '영입 계획이 없다'라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후 두산에서 김동주에 대해 '만약 돌아오면 수정된 계약 조건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혀 'FA 미아' 신세는 면하게 됐지만 14년 간 '두목곰'으로 군림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김동주의 올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춥다.
▲ 입단 동기 임경완-신경현의 FA
올해 FA를 신청한 17명의 선수 가운데 김동주, 조인성, 임경완, 신경현은 모두 1998년 입단 동기다. 김동주-조인성과 마찬가지로 임경완 역시 인하대를 졸업하고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우선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리고 한 번도 롯데를 떠나지 않고 팀을 지키며 마운드에서 궂은 일은 도맡아 했다. 임경완은 올해 FA를 선언했을 때 팀 잔류에 대한 의지가 강했지만 롯데 역시 프랜차이즈에 대한 대우가 부족했고 결국 SK가 '3년간 11억 원'이라는 조건으로 뻗은 손을 잡았다. 또 한 명의 프랜차이즈가 팀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이 가운데 신경현만이 셋과 운명을 달리했다. 1998년 동국대 졸업 후 한화가 2차 1번으로 지명해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신경현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2004년 이후 팀의 주전포수 자리를 차지해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결국 신경현은 16일 2년 7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올해 17명의 FA 선수 가운데 가장 빠른 발표였다. 한화는 신경현의 노고를 인정했고 신경현 역시 구단 제시를 받아들여 사실상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유례없이 활발한 올해 FA 시장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프랜차이즈의 이탈'이다. 조인성과 임경완은 야구 인생의 전부와도 같았던 팀을 떠났다. 김동주는 원 소속팀 복귀가 점쳐지지만 아직 거취가 결정되지 않았다. 올해 FA 협상 결과에 따라 프랜차이즈 가치에 대한 논의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단의 입장과 선수의 입장, 과연 팬 들은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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