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뒤 찬스'. 야구계의 대표적인 속설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아시아 시리즈를 앞두고 덕 매티스, 저스틴 저마노, 윤성환, 안지만 차우찬 등 주력 투수들의 대거 이탈했다. 아시아 시리즈 제패를 위한 최강 전력을 구성하지 못했지만 신예 발굴을 위한 시험 무대이기도 하다. 전훈 캠프에서 열리는 연습 경기는 한계가 있다. 어쩌면 '흙속의 진주 찾기'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삼성은 이동걸(28)을 비롯해 김기태(24)와 김건필(23)의 어깨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야구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잠재 능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동걸, 김기태, 김건필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왔다"고 했다.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는 이동걸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이동걸이 훈련 메뉴를 충실히 소화하고 훈련하는 자세와 야구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만족스럽다". 휘문고와 동국대를 거쳐 2007년 삼성에 입단한 이동걸은 1군 무대에 통산 3차례 등판해 승패없이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한 바 있다. 올 시즌 2군 무대에서는 6승 5패 1홀드(평균자책점 6.08)를 거뒀다. 데뷔 후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동걸은 아시아 시리즈 참가를 통해 전환점을 마련할 각오.

이동걸은 "아시아 시리즈에 참가하게 돼 영광이다. 입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내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주축 투수들이 빠진게 내겐 기회였다. 상대에 관계없이 평소 하던대로 하겠다. 부담을 가지면 더 안된다. 야구는 어디서든 다 똑같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그는 "올 시즌 내내 2군에 머물렀는데 마운드에 오르는 자체가 기회"라고 허허 웃은 뒤 "어렵게 잡은 만큼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10월 국방의 의무(상무)를 마치고 삼성에 복귀한 김기태는 올 시즌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2군 경기에 15차례 등판, 6승 5패(평균자책점 6.00)를 거뒀다. 양일환 2군 투수 코치는 "김기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그의 활약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많이 답답했다. 기회는 많았는데 제대로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성공을 향한 김기태의 의지는 확고했다.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에서도 마음 편히 하라고 하시고 형들도 많이 도와주신다. 스스로도 내년이 기대된다".
대구고 출신 김건필은 "돌이켜 보면 입단 후 뭐 하나 제대로 한게 없다"고 후회했다. 그는 "더 이상 유망주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다만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다. 경산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한 뒤 8월 20일에 소집 해제된 그는 "이젠 야구에 몰두할 수 있다"고 선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 오키나와 캠프에서 아시아 시리즈까지 참가하게 돼 운이 좋은 것 같다. 기회가 생겼다"며 "예전부터 프로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 실력 뿐만 아니라 기회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기회가 온 것 같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세상 모든게 보는 시간에 따라 다르다. 주력 투수들의 잇딴 이탈은 위기가 아닌 기회일 수도 있다. 1군 승격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이들이 아시아 시리즈를 통해 깜짝 스타로 발돋움할지 모르는 일이다. 더 이상 나빠질게 없다. 이젠 좋아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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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걸-김기태-김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