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경기도 이천 베어스파크(두산 베어스 2군 훈련장). KIA와 2군 경기 중 한 투수는 제구 난조로 상대 타자의 머리를 맞추며 헬멧을 박살내는 공을 던진 뒤 불펜으로 들어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코치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상대 머리를 맞추겠다고 던진 공이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대신 다시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야구에 매달려야 한다”. 7년차 우완 서동환(25)과 당시 2군 투수코치였던 김진욱 두산 신임 감독의 일화다. 1년 반이 넘은 현재 서동환은 빼어난 구위와 허를 찌르는 변화구 구사력을 선보이며 5선발 보직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2005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2차 지명 전체 2순위(계약금 5억원)로 두산에 입단했던 서동환은 그동안 고질적인 제구난조로 인해 번번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팔꿈치 수술로 인해 1년 여 동안 사실상 은퇴 조치를 당하기도 했고 올 시즌에는 잠시 주목을 받았다가 다시 제구난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서동환의 2011시즌 성적은 11경기 1승 2패 평균자책점 4.50.

일본 미야자키 현 사이토시에서 마무리 훈련 중인 두산 투수진 중 서동환은 가장 페이스가 좋은 투수로 꼽히고 있다. 자체 청백전 2경기 도합 5이닝 3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한 서동환은 지난 24일 넥센과의 연습경기서 선발로 나서 4이닝 4피안타 무실점투를 보여줬다. 최고 150km의 직구와 커브, 포크볼을 곁들이며 상대 타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평이다.
투수진 맏형 김선우와 재계약에 성공한 더스틴 니퍼트, 올 시즌 선발로 좌충우돌하면서도 6승을 올리며 가능성을 비춘 이용찬이 내년 선발진 주축으로 꼽히는 가운데 서동환은 신인 사이드암 변진수, 2년차 좌완 정대현 등과 함께 4~5선발 후보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7시즌 동안 잦은 부상과 제구 난조에 울었던 서동환이 마무리훈련부터 이렇게 기대를 모으기는 2004년 말 팀 입단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2군에서 자신을 보살피며 쓴소리도 아끼지 않던 김 감독의 존재는 서동환에게도 큰 힘이 된다. 서두에 언급된 일 외에도 김 감독은 서동환을 비롯한 2군 유망주들의 의욕을 잃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바 있다. 지난 5월 31일 문학 SK전서 데뷔 첫 선발승(5이닝 3피안타 1실점)을 거뒀을 때도 서동환은 “김진욱 코치님 덕택에 일군 승리다”라며 은사를 잊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호조가 서동환의 선발 성공을 100% 보장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관중이 운집한 1군 마운드에서 서동환이 위축되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벽을 넘지 못하면 다시 이전의 안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단 서동환이 선발 후보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유리한 위치를 향해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 7년 간 단 2승에 그쳤던 대형 유망주 서동환은 ‘진짜 1군 투수’가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힘찬 팔스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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