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극복했던 일본차의 경쟁력 기억해야
[데일리카/OSEN=김철수(자동차산업 평론가)] 작년 3분기 3,200억엔 흑자. 올 3분기 325억엔 적자. 도요타의 3분기 경영실적이다. 도요타뿐만 아니라 일본 7개 자동차 회사 중 6개사가 3분기 적자 또는 이익이 감소하는 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작년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한 이미지 추락, 3월 대지진과 최근 태국 홍수 등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지금 일본 자동차 업계의 발목을 가장 확실하게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환율일 것이다.
11월 10일 엔/달러 환율은 달러 당 77.7엔이다. 지난 10월 28일에 사상 최저인 75.8엔까지 떨어지는 등 일본 산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던 80엔을 밑돌고 있다. 최근 5년간 환율 변동 추이를 보면, 2007년 6월 22일 124엔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2008년 3월 21일 99.4엔, 2009년 4월 10일 100.4엔을 기록한 후 지금까지 2년 반 넘게 단 한 번도 100엔을 넘지 못했다. 올 7월 15일 79.07엔으로 80엔이 무너진 이후엔 70엔대 후반으로 고착화되는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내수보다는 해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이 일본차를 지탱해 왔는데, 엔고가 해외의 막대한 이익을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도요타는 2000년 중반 이후 급속한 성장모드를 달리며 2008년 GM을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완벽한 품질 추구, JIT(Just in Time)의 독특한 생산시스템, 시장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 기술 및 차량 개발 등 도요타 자체의 뛰어난 경쟁력이 가장 근본적인 배경이다. 또한 세계 최대 업체였던 GM을 비롯한 미국 업체가 시장의 욕구를 무시하다 스스로 몰락한 것과 100~120엔대의 약한 엔화도 한몫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도요타는 올해 세계 1위 자리를 GM 또는 폭스바겐에 내주고 세계 3위 또는 4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판매량 역시 최고 전성기 때 900만대를 가뿐히 넘겼으나 올핸 700만대 안팎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지난해 리콜사태 여파, 환율 등이 주된 이유이다.
환율을 제외한 외적 요인들은 모두 단기적으로 극복 가능한 것들이다. 대지진 피해는 거의 복구되었고, 태국 홍수로 인한 피해는 대지진 피해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준에 불과하고 복구도 그만큼 빠를 것이다. 리콜사태 여파 역시 미국 교통당국의 전자계통 이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최종 결과 발표와 대지진 전 공격적인 판촉활동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환율은 업계 스스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적 정치적 요인에 의해 환율이 변동되기 때문이다. 과거 1등 등극에 큰 힘을 보탰던 환율이 수렁에 빠진 발목을 완벽하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아 보자. 일본 자동차 업계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240엔대의 환율이 불과 1년 뒤인 1986년 8월에 155엔으로, 1995년엔 80엔까지 급속하게 떨어지는 급격한 엔고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 타격 속에서도 일본 자동차 업계는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240엔대의 경쟁력을 80엔대로 한층 더 끌어 올린 것이다.
환율 흐름은 언젠가 변할 것이다. 엔高가 엔低로, 원低가 원高로 바뀔 수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그때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일본 자동차 업계와 지금보다 훨씬 불리해진 원/달러 환율조건에 맞서야 한다.
1998년 IMF 구제금융 전 원/달러 환율은 달러 당 800원 안팎이었으나 지금은 1,100원 안팎으로 원화 가치가 약 300원 정도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이 IMF 전 수준인 800원대로 내려갔을 때 한국 자동차 업계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면밀히 점검해 봐야 한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현재의 양적 성장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경쟁력을 강화하며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다. 위기는 항상 잘 나갈 때 불시에 찾아온다는 점을 지금 국내 자동차 업계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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