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팀은 역시 백업이 강했다.
소프트뱅크는 정상 전력이 아니었다. '원투스리 펀치' 와다 쓰요시, 스기우치 도시야, D.J 홀튼이 모두 불참했고, 타선에서는 베테랑 고쿠보 히로키와 마쓰나카 노부히코가 빠졌다. 그렇다고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우승이 평가절하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삼성도 정상 전력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삼성은 외국인 투수 덕 매티스와 저스틴 저마노가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했고, '불펜 에이스' 안지만과 공수주 삼박자를 두루 갖춘 조동찬이 기초군 사훈련으로 빠졌다. 여기에 팀 내 선발 다승 1~2위의 윤성환과 차우찬마저 피로 누적으로 제외됐다. 삼성도 빠진 전력으로 따지면 소프트뱅크에 크게 뒤질게 없는 상태였다.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빠졌다. 주전 포수 진갑용이 왼손 검지, 공수에서 활약하던 내야수 신명철마저 오른 손바닥 통증으로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베테랑 박한이마저 2회 수비 중 오른쪽 무릎을 다치며 들것에 실려나가야 했다.
하지만 삼성은 위기 때일수록 강했다. 진갑용이 빠진 포수 자리에는 이정식이 들어가고, 신명철의 2루 빈자리는 수비가 좋은 손주인이 메웠다.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쓴 이정식은 안정된 수비와 투수리드로 선발 장원삼과 환상의 호흡을 이뤘고, 손주인도 안정된 수비뿐만 아니라 끈질긴 커트로 상대 투수들을 괴롭혔다. 진갑용과 신명철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안정감을 뽐냈다.
백미는 박한이의 예기치 못한 부상에 따른 긴급 상황에서 나왔다. 류중일 감독은 박한이가 빠진 우익수 자리에 3년차 신예 정형식을 기용했다. 정형식은 0-1로 뒤진 5회 1사 만루 찬스에서 소프트뱅크 선발 이와사키 쇼의 초구 변화구를 받아쳐 중견수 앞으로 떨어지는 역전 결승 2타점 적시타를 작렬시켰다. 수비에서도 폭넓은 범위를 자랑하며 박한이의 빈자리를 공백없이 메웠다.
올해 삼성이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를 제패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축 선수들의 큰 부상이 없는 게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즌 중 류중일 감독은 "채태인과 조동찬이 부상을 입었을 때 조영훈과 손주인이 잘 메워줬다. 라이언 가코가 나가자 모상기가 나타났고, 배영섭이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정형식이 잘 해줬다"고 말했다. 에이스 차우찬이 팔꿈치 통증을 느낀 후에도 서두르지 않고 재활하며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원이 풍족한 투수진 덕분이었다.
주축 선수들이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떨어져나간 아시아시리즈 결승전에서 삼성의 두터운 선수층이 제대로 진면목을 드러났다. 백업이 강한 팀은 위기에 강한 법이다. 삼성은 아시아 최정상이 될 자격을 갖춘 팀이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