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고교 최대어로 꼽혔던 두 투수. 그러나 한 명은 프리에이전트(FA) 수혜를 입으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향해 간 반면 한 명은 쓸쓸히 자유계약 방출의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에 새 둥지를 튼 좌완 이승호(30)와 두산 베어스서 방출된 우완 조규수(30)가 그 주인공이다.
이승호는 지난 22일 롯데와 4년 최대 24억원의 계약을 맺으며 거인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맞았다. 2000년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으로 프로 유니폼을 입은 이승호는 해체된 쌍방울 선수단을 승계한 SK 유니폼을 입고 통산 374경기 73승 64패 41세이브 22홀드 평균자책점 3.87을 기록했다. 신생팀 SK가 첫 번째로 배출한 에이스이자 신인왕으로 활약했던 이승호는 이제 롯데맨으로 투수진 주축이 될 예정.
반면 조규수는 30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발표한 차년도 8개 구단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0년 천안 북일고를 졸업, 연고팀 한화의 1차 지명 입단했던 조규수는 그 해 10승을 따내며 이승호와 신인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깨 부상 및 수술, 병역 의무 이행 등으로 인해 점차 내리막을 걸으며 결국 156경기 28승 42패 8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26의 성적을 남기고 다른 팀을 찾아봐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둘은 1999년 대구상고 장준관(전 LG), 선린상고 전하성 등과 함께 고교 최대어 자리를 다투던 실력파 유망주들이었다. 이승호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 과감하게 묵직한 공을 던지며 군산상고 에이스로 활약했고 조규수는 예리한 직구-슬라이더 조합으로 오윤(넥센)과 배터리를 이루며 천안북일고를 고교 강호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데뷔 첫 해 나란히 10승씩을 올리며 팀의 주축 투수 노릇을 했다. 이승호는 시드니 올림픽에도 참가해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 혜택까지 받았다.
이후의 모습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신무기 체인지업 장착 실패로 인해 점차 시즌 승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며 주춤했던 조규수에 비해 이승호는 2001년 14승에 이어 2004년 15승을 올리며 SK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5년 이후로는 둘 모두 부상으로 인해 내림세를 탔다. 어깨 수술을 받은 조규수는 병풍에 휘말려 공익근무로 복무했으나 개인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130km 이상의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승호 또한 어깨 수술로 인해 2007년 임의탈퇴 공시되는 등 힘든 나날을 겪었다. 그러다 2008년을 기점으로 둘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2008시즌 4승 5홀드를 기록하며 부활 조짐을 보인 이승호는 2008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서 전성 시절의 구위를 완전히 회복하며 혼자 4홀드를 따냈다. 당시 좌완 이혜천(두산)을 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던 야쿠르트 스카우트들이 이승호의 모습에도 혀를 내둘렀고 일본 리그서 이승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계기다.
반면 조규수는 한화 복귀 이후에도 좀처럼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방출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결국 2009년 11월 조규수는 팀 후배인 좌완 김창훈과 함께 유격수 이대수의 반대급부로 두산 이적했다.
이승호는 최근 3년 간 SK 마운드서 선발-계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활약을 보이며 19승 28세이브 14홀드를 더했다. 올 시즌 이승호는 직구 구위가 떨어지는 모습으로 6승 3패 2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50에 그치기는 했으나 아직 슬라이더의 움직임은 분명 좋았고 FA 시장 계투 특수 아래 혜택을 얻었다.
그에 반해 조규수는 두산 이적 후 1군 경기 두 차례 등판에 그쳤다. 미야자키 전지훈련서부터 열심히 훈련했고 최고구속이 138km까지 상승하며 가능성을 높였으나 1군 투수로 놓기에는 구위가 아쉬웠다. 올 시즌 초 구단으로부터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았으나 선수 생활 연장을 위해 제의를 거절했던 조규수는 시즌 후반기 2군 마무리로 나섰으나 타구에 정강이를 맞는 불운 속에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자유계약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2년 전 고교 최대어였던 두 투수. 같은 시즌 데뷔하며 먼 곳에서도 서로를 격려해주던 라이벌이자 친구. 어깨 부상과 수술도 비슷한 시기에 겪었던 두 동기생은 2011년 11월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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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조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