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농구를 펼치던 포인트가드는 체력이 떨어지면 급격히 쇠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그 점을 유의해야 한다".
패싱 감각은 분명 살아있었다. 그러나 긴 실전 공백 때문인지 빠른 발놀림으로 백코트진을 이끌던 모습은 아직 찾아보기 힘들었다. 641일 만에 코트를 밟은 '매직 핸드' 김승현(33. 서울 삼성)이 앞으로 보여줄 행보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허리 부상과 전 소속팀 오리온스와 이면계약 파동에 이은 임의탈퇴 공시, 여기에 법정 공방까지 벌어지며 오랫동안 코트를 밟지 못하던 김승현은 지난 7일 인천 전자랜드와 경기에서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복귀전을 치렀다.

단 한 개의 슈팅만을 시도했으나 무위에 그친 김승현은 18분 53초 동안 6개의 어시스트와 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다. 4쿼터서는 이승준과 호흡을 맞춰 멋진 픽앤롤 플레이와 노룩 패스를 선보이며 죽지 않은 감각을 과시했다.
2001~2002시즌 대구 오리온스서 데뷔한 이래 한국 농구의 트렌드세터로 명성을 떨친 포인트가드의 귀환인 만큼 그의 복귀전은 농구 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 그러나 수비 면에서는 특유의 순간 스피드가 나오지 않으며 고전하기도 했다. 김상준 감독 또한 김승현에 대해 "하체 밸런스가 맞지 않아 순간적으로 빠른 스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재활훈련을 병행하는 만큼 그 점도 점차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패스의 질은 역시 차원이 다르더라"라는 기대감을 비췄다.
선수 본인은 복귀전을 치른 뒤 "아직 스피드를 더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 동료들이 다들 기동력을 갖춘 만큼 패턴 플레이에도 힘을 기울이며 호흡을 더욱 맞춘다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좋은 패스가 나왔을 때는 스스로도 짜릿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 시즌 만이 아닌 다음까지 생각한다면 김승현이 앞으로 펼칠 활약상에는 과제도 남아있다. 복귀전 막판 이승준과 멋진 2-2 플레이를 펼쳤으나 귀화 선수 드래프트 후 3시즌 동안 삼성에서 뛴 이승준은 올 시즌 후 팀을 떠날 운명에 처해있다.
데뷔 이후 마커스 힉스, 피트 마이클 등 테크니션과 찰떡 궁합을 보여줬던 김승현인 만큼 스타일이 유사한 이승준과도 좋은 호흡을 과시했으나 시즌 후 삼성이 운동능력과 기술을 겸비한 선수를 보강하지 않는 한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김승현이 우리 나이 서른 다섯을 향해 간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포인트가드 출신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김승현의 복귀를 농구인 입장에서 환영하면서도 경기력을 예상하는 데 있어서는 냉정했다.
"원래 김승현은 공격보다 수비가 더욱 돋보였던 선수다(수비 5걸 1회, 가로채기 타이틀 4회). 그러나 실전 감각이 현저히 떨어진 만큼 대인 방어나 도움 수비 등 수비 면에서는 적응력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속공 능력 전개와 경기 조율 면에서도 잘 지켜봐야 한다. 속공을 잘 전개하던 가드는 체력이 떨어졌을 때 급격히 쇠퇴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게 마련이다".
사령관의 순간 스피드가 떨어져 빠른 공격을 전개하지 못하면 결국 전체적으로도 공격 템포가 지체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결국 김승현이 오랫동안 명품 포인트가드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속공 위주만이 아닌 세트 오펜스 조율로도 제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동희(동부 감독) 선배는 세트 오펜스 조율도 잘 했던 명 가드였다. 김승현 또한 5명이 함께 했을 때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운용을 할 줄 아는 선수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앞으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엄청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속공 지향형 스타일로는 오랫동안 명성을 떨치기 힘들다는 뜻이 숨어있다.
그러나 세트 오펜스는 결국 수비가 비는 자리를 찾고 1-1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동료들의 능력이 중요하다. 현재 삼성은 원래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이정석과 베테랑 슈터 이규섭의 부상으로 선수층이 한층 얇아졌다. 또 한 명의 포인트가드 이시준은 몸 상태가 성치 않으며 빅맨 민성주를 주고 오리온스에서 영입한 슈터 스타일의 박재현은 삼성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포워드 우승연은 무릎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즌 반환점을 향해 가는 현재 8일까지 삼성의 시즌 전적은 4승 19패로 최하위. 6위 서울 SK(11승 12패)와는 무려 7경기 차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은 사실상 좌절을 향해 있다. 규정 상 귀화 외국인선수 이승준과 시즌 후 이별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삼성은 제대로 된 '김승현 활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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