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제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더 떨어질 곳이 없어요. 죽어라 야구에 매달리겠습니다”.
그는 2년 전 팀을 옮기면서 뜨거운 각오와 함께 야구 인생의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2년 후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꾸던 무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또 하나의 ‘연습생 성공기’를 보여준 이대수(30. 한화 이글스)는 눈물을 닦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대수는 지난 11일 서울 대치동 SETEC에서 열린 2011 롯데카드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호명되었다. 우승 유격수 김상수(삼성)를 비롯해 강정호(넥센), 김선빈(KIA) 등 출중한 선수들과 경합을 벌여 승리한 선수는 3할1리 8홈런 50타점 10실책(수비율 9할7푼8리)의 성적을 거둔 신고선수 출신 11년차 내야수였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지난 1999년 말 쌍방울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팀의 공중분해로 1년을 쉰 뒤 SK 신고선수로 어렵게 프로 무대를 밟은 이대수. 체구는 작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수비를 보여줘 강병철 SK 창단 감독의 시선에 포착,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대수는 야구 인생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다. 2006년 조범현 감독 시절 어렵게 주전 유격수로 우뚝 섰으나 이듬해 사이드스로 송구를 선호하지 않는 김성근 감독의 눈 밖에 나 2007년 4월 하순 두산으로 이적했다.
두산에서 2년 연속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공헌하며 주전 유격수가 되는 듯 했던 이대수는 원 주전 유격수 손시헌의 제대와 함께 자리를 잃었다. 당시에 대해 이대수는 “내게 그저 유틸리티 내야수의 기대치가 아니라 시헌이 형과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유격수의 기대치가 있었더라면”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2009년 1군 39경기 출장에 그치며 속앓이를 했던 이대수는 결국 2009시즌 후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다. 지난 시즌 5실책 밖에 저지르지 않았으나 타율이 2할3푼2리에 그치며 체력 저하에 힘겨워했던 이대수는 올 시즌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키운 뒤 프로야구 사상 16번째 ‘3할 유격수’가 되어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다. 수상자가 된 이대수는 고향 군산 신시도 바닷가에서 김 양식을 하며 자신을 어엿한 프로야구 선수로 키운 부모님의 생각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중학교 때 쌍방울배 야구대회에서 미기상을 탄 이후로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왜 울었냐고요?(웃음) 상 타고 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소감을 이야기하다가 부모님이 생각나면서 울컥하게 되더군요. 절 운동시키느라 매일 찬바람 맞으시면서 그렇게 일하셨거든요”.
부모님이 야구인생의 버팀목이었다면 얼마 전 첫 딸을 얻은 이대수에게 아내와 두 아이는 야구인생의 복덩이와도 같다. 아들 시헌이가 태어날 무렵 이대수는 한화로 트레이드되며 야구 인생의 새 전기를 맞았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 1주일 후 아버지는 어엿한 골든글러브 유격수로 우뚝 섰다.
“복덩이지요. 복덩이. 공주라서 너무 귀여워요. 우리 아기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어깨도 좀 무겁고.(웃음) 내년에도 준비 잘 해서 꼭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고 싶어요. 오늘의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운동하겠습니다”.
뛰어난 경쟁자가 많다는 것은 이대수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된다. 골든글러브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이대수의 득표수는 127표로 차점자 김상수(111표)와 불과 16표 차이였다. 올 시즌 함께 골든글러브를 놓고 각축을 벌였던 걸출한 경쟁자는 물론 팀 선배였던 손시헌과 '국민 유격수‘ 박진만(SK), 미완의 대기 오지환(LG) 등 라이벌이 많다.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이대수의 골든글러브는 다음 시즌 ’유격수 춘추전국시대‘의 막을 연 것과 다름없다.
“올해 상을 탔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올해 경쟁했던 선수들은 물론이고 출중한 선후배들이 많으니까요. 꾸준하게 체력을 보완하고 공-수에서 팀에 공헌하는 모습을 보여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불어넣고 싶습니다. 오늘 흘린 눈물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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