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야구장에 펜스가 없었더라면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1.12.14 06: 40

만약 야구장에 펜스가 없다면 야구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을까요.
2009년 LG 김재박 전 감독은 좌우 100m, 중앙 125m에 이르는 잠실구장의 펜스를 앞으로 당기는 이른바 'X-존'을 설치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2008년 잠실구장의 경기당 홈런이 0.98개였던 것에 비해 2009년에는 2.25개로 두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상 홈팀인 LG보다는 원정팀이 더 득을 본다는 지적으로 2011년 폐지됐습니다. 이처럼 펜스 몇 미터만 차이가 나도 홈런의 숫자는 크게 달라집니다.
현재 야구 규약에 따르면 홈플레이트부터 펜스, 스탠드까지의 최소 거리는 76.199m(250피트)이어야 하지만 좌우 양 끝은 97.534m(320피트), 중앙 끝은 121.918m(400피트)이상을 이상적인 거리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야구연맹은 외야 펜스까지 거리를 좌우 98m, 중앙 122m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야구장 펜스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은 최소거리에 대한 제약은 있어도 먼 거리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국내 야구장의 좌우 펜스거리가 일정하긴 하지만 원래는 규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같은 경우는 '그린 몬스터'라고 불리는 좌측 담장이 있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팬웨이파크가 비대칭 구장으로 유명하죠. 우리나라 야구장은 일본 구장의 영향을 받아 좌우 펜스의 길이가 균등한 형태로 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전 메이저리그 야구장들은 규격이 제각각이었죠.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이었던 폴로파크는 홈플레이트서 중앙 펜스까지 무려 160m나 되는 거리였습니다. 지금까지 명수비로 회자되는 1954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온 윌리 메이스의 '더 캐치'가 대단한 이유는 타구가 잡힌 지점이 홈플레이트부터 무려 139m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야구장이었으면 전광판을 때릴 만한 대형 홈런타구를 메이스는 끝까지 따라가 잡아내고, 거기에 미리 스타트를 끊은 주자까지 잡아냈으니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아예 야구장에 펜스가 없다고 가정하면 야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일단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사라지니 투수들은 반길까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공이 외야수의 키를 넘어가면 무조건 그라운드 홈런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보통의 야구장에서는 2루타로 막을 타구를 홈런으로 내 주는 격이 되겠죠.
또한 이를 막기위해 외야수들이 극단적인 후진 수비를 펼친다면 그만큼 내야수와 외야수 사이에 빈 공간이 많아 안타가 나올 확률도 높아지겠죠. 어쩌면 초창기 야구에서 유격수가 외야와 내야의 중간 자리잡아 중계플레이에 주력했던 것처럼 회귀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결국 투수에게는 '홈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달갑지 않은 펜스가 오히려 실점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이리 따져보고 저리 따져봐도 현재의 야구는 절묘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140여년의 전통을 가진 종목이기에 꾸준히 수정 발전되어 왔기에 지금에 이르렀겠죠. 제가 보기는 힘들 것 같지만 100년 뒤의 야구는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신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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