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면 각 구단의 전력분석원을 포함한 기록원들과 KBO 공식기록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댄다. 시즌 동안 늘 현장을 지켰으면서도 업무 성격상 제대로 된 만남 한 번 갖기 어려웠던 사이들이지만, 마무리 훈련을 끝내고 난 겨울 길목에서 그 동안 담아왔던 이야기들을 가지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합동 기록세미나가 처음 열린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기록원과 구단 기록원간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그 당시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소통이었다. 경기 중 일어나기 마련인 기록판정과 관련된 트러블을 조정한다거나 또는 의견차를 좁혀 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터라 분쟁만 난무할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함께 찾아보려는 시도와 노력은 아무래도 미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떠오른 대안이 프로야구 기록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야구기록과 관련된 의견들을 나누고 생각차이를 좁혀 볼 수 있는 마당을 만드는 일이었고, 이러한 공식기록원들의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진 결과, 합동 기록세미나라는 이름의 모임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간 합동세미나에서 다뤄진 주제들을 돌이켜보면 무척 다양하다. 기록판정 중에서 가장 이견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는 분야인 안타와 실책을 비롯, 구원승 결정기준, 무관심도루 판단, 희생번트와 기습번트의 구분, 자책점 판별의 합리성, 타자의 타점 인정여부, 본 헤드 플레이의 실책기록 기준 등등, 야구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론 기준을 앞에 놓고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다.
이러한 토론들은 경기인 출신이 많지 않은 공식기록원들로서는 야구 기록이론 위에 실전경험에서 배어 나오는 구단기록원들의 상황에 따른 기술적, 심리적 조언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 기회였고, 세세한 규칙과 이론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구단기록원들로서는 큰 틀의 기록원칙과 조밀한 이론들을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했다.
기록판정의 변천사를 되새겨보면 합동세미나를 통해 정립된 이론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왔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우선 프로 초창기만 해도 잡기 어려운 송구로 간주해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았던 낮은 송구에 대한 1루수의 수비반경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땅에 바운드되지만 않았다면 지금은 송구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1루수의 포구미스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지 않는다.
또한 내야수가 깊은 타구를 잡아 1루로 바운드 송구를 하는 경우, 의도적인 송구로 판단되면 가급적 송구자의 어려운 위치를 감안, 실책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외야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외야수의 원거리 송구가 바운드 되면 그 책임을 외야수에게 주로 물었지만, 지금은 바운드 송구라도 포구자가 대처 가능한 바운드였다면 외야수가 아닌 포구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구원승 결정 부분에선 숫자로 드러나는 투수의 통계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경기의 흐름에 따른 투수들의 투구내용에 주안점을 둔 구원승 결정 빈도가 과거에 비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은 로또급 행운의 구원승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규칙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선수들의 기여도에 따른 차등을 구별해 줄 것을 요청한 구단 기록원들의 정서가 상당부분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2002년 첫 적용되기 시작한 무관심 도루 역시 선수들로서는 민감한 사안의 문제일 수 있었지만, 팀 안에서 경기분위기와 선수들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구단 기록원들의 조언은 판정기준 마련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사안은 2003년부터 시행된 희생번트와 기습번트의 구별기준에 대한 재고였다. 경기 중 선수단 안에서 일어나는 플레이와 연관된 사인을 완벽히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타자의 번트 동작만을 기준으로 희생과 기습을 가름해왔던 공식기록원들의 관례를 일거에 뒤흔들었던 주제로, 이 또한 초빙된 현역 타격코치와 구단 기록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호소(?)가 판정기준 변혁의 시발점이 된 경우였다.
그 밖에도 여러 분야의 기록판정에 대한 많은 의견과 제안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곤 했는데, 이번 2011 합동세미나에서 다뤄진 내용들 중, 가장 크게 울린 현장의 목소리는 굵직한 기록과 관련된 판정에 있어 좀더 선수의 기록을 살려주는 쪽의 사고가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었다.
지난 4월 8일 LG의 3루주자 서동욱이 득점시도 과정에서 한화 윤규진 투수의 투구가 약간 옆으로 쏠린 영향으로 홈에서 살았음에도 규칙상 홈스틸이 아닌 폭투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된 것을 놓고, 이론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구정황상 포수나 투수의 미스플레이라기 보다 주자플레이를 잘 한 것으로 해석해 주었으면 한다는 제안이었는데, 공식기록원들로서도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었다. 여담이지만 해당구단에서는 고과상 서동욱의 득점을 홈스틸 성공으로 간주, 후한 점수를 부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세미나 안건이나 내용보다 이번 합동세미나가 더욱 빛났던 이유는 프로야구의 새로운 식구가 된 NC 다이노스가 자리를 같이 했다는 점이다. 아직 정식시즌을 치르지 않은 상태임에도 인선이 우선 정해진 기록관련 요원들을 파견, 선수 수급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은 여타의 참석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여기에 일부 구단에서 운영중인 스트라이크 존 판독 시스템 관리 등, 구단 기록업무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스포츠 투아이(주)에서도 관계자들이 동석, 프로야구 기록계의 동향과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광범위한 야구기록의 발전에 기름진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가 갈수록 하나 둘 늘어가는 참석자들을 보며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10구단의 또 다른 기록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모든 기록원들과 함께 기원해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