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리그에는 선수 임대제도가 있습니다. 우리 팀에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선수라도 다른 팀으로 가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가 될 수 있죠. 그렇기에 활발한 선수 임대를 통해 원 소속구단은 유망주의 육성과 수익을, 임차 구단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선수 수급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제도는 우리 프로농구에도 있습니다. '임대제도'라고 명문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각 구단간에 양해를 구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선수 임대제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규약 제86조 [선수대여금지] 조항에 따르면 '구단은 타구단에 선수를 대여하거나 또는 소환권을 유보하거나 조건부로 선수계약을 양도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갑작스런 전력 누수가 발생하면 구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트레이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지난 2009년 삼성은 주전포수 진갑용의 부상에 이정식까지 부상을 당해 포수가 현재윤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수가 여유있는 두산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결국 좌완 원포인트 지승민을 내주는 대신 채상병을 데려왔습니다.
사실 구단은 임대제도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습니다. 한 구단 관계자는 "분명 전력 손실이 있을 때는 유용할 수 있다"면서도 "만약 임대로 빌려준 선수가 우리팀을 상대로 활약을 한다면 어떡하냐. 그리고 원 소속구단 경기 출전 금지를 한다 하더라도 부상을 입는다면 팀 전력에는 손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만만찮은 후폭풍 때문에 나서기가 조심스럽다는 것이죠.

임대제도가 도입된다면 가장 좋은점은 선수에게 활약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두산은 타구단에 비해 포수자원이 넉넉하고 삼성은 불펜투수가 풍부합니다. 또한 줄부상 등으로 전력 보강이 필요할 때 트레이드보다 손쉽게 구멍을 메울 수도 있죠.
그렇지만 임대제도가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야구판이 좁기 때문입니다. 원 소속구단 출전금지 조항을 만든다 하더라도 한국 프로야구는 8개구단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약점을 보완하는 것은 곧 우리팀의 전력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한 임대로 떠난 선수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손해가 막심하기에 주저하는 것이죠. 여기에 연봉문제, 자팀 기밀 누설등이 걱정거리로 꼽힙니다.
KBO 정금조 운영팀장은 국내에 임대제도가 없는 이유로 "우선 우리 야구는 인프라가 넓지 않고 판이 좁기에 선수 몇 명이 왔다갔다 하는걸로 리그의 판도가 바뀔 우려가 있다"면서 "특히 임대제도가 생긴다면 선수 계약부터 시작해 많은 부분이 싹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예로 정 팀장은 FA 취득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현재 FA 취득 요건은 '데뷔 후 9년 동안(대졸자 8년) 1군 등록일수가 연간 150일 이상'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수많은 백업 선수들은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해 FA 선언은 힘든 실정인데요. 정 팀장은 "만약 임대가 가능해지면 더욱 많은 선수들이 더 빨리 FA 조건을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해외로의 선수유출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규정 손질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때 NC 다이노스의 선수수급 방안과 관련, 임대선수 논의가 있었습니다. 올 시즌 종료 후 NC가 FA 선수를 영입하려 해도 내년은 2군서 뛰어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영입이 쉽지 않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NC가 FA 선수를 영입하면 그 선수를 1년간 8개구단 가운데 한 팀으로 임대 시켜주는 것이 꼽혔는데요. 당시 KBO도 "선수 임대는 야구규약 상 어긋나지만 구단간 합의가 있다면 큰 문제는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NC는 올해 FA 선수를 잡지 않으면서 자연히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습니다.
선수임대제도는 분명 명과 암이 존재합니다. 확실히 선수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구단도 손쉽게 전력보강이 가능하지만 이제껏 도입되지 않았던 제도이기에 조심스럽습니다. 만약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견 취합과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천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