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장 여몽의 고사인 오하아몽 괄목상대(吳下阿蒙 刮目相對)가 절로 떠올랐다. 불과 올 시즌 초까지 트레이드 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며 저평가되던 그가 없었더라면 올 시즌 우여곡절이 많았던 SK 와이번스의 호성적은 장담할 수 없었다.
무명의 터널을 빠져나와 이제는 SK에 없어서는 안 될 투수로 자리매김한 ‘동안 좌완’ 박희수(28). 그가 한 시즌을 돌아보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을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동시에 그저 하루 반짝하는 반딧불 같은 존재가 아닌 오랫동안 불을 밝히는 모닥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대전고-동국대를 거쳐 2006년(2002년 지명) SK에 입단했으나 2010시즌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박희수는 올 시즌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투수진에 가세해 39경기 4승 2패 1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1.88로 활약했다. 그동안 1군보다 2군 무대가 익숙했고 미디어보다 트레이드 협상에서 자주 이름이 올라갔던 박희수는 비로소 제 실력을 유감없이 떨쳤다.

특히 김성근 감독의 중도하차 등으로 인해 어수선했던 8월 박희수는 11경기 1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41로 활약했다. 9월 이후에도 박희수의 성적은 16경기 2승 1패 4홀드 평균자책점 1.33으로 뛰어났다. 단순히 박빙 리드만이 아닌 추격조로도 대단한 활약을 펼쳤던 만큼 경기 내용 면에서 더욱 호평을 받았던 박희수다.
“인터넷으로 트레이드 루머를 접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라며 자신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을 떠올린 박희수. 사실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타 구단에서는 박희수에 대해 “직구 스피드가 다소 아쉽지만 제구력이 좋고 타이밍을 뺏는 투구를 할 수 있어 선발로도 가능성이 있다”라는 분석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박희수는 올 시즌 타 팀에서 단점으로 지적하던 직구 스피드를 확실히 보완했다. 최고 147km의 제구된 직구는 분명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려웠다.
“지난해까지도 최고 구속이 143km 정도였어요. 평균 구속은 당연히 그만큼은 아니었고요. 그러다 올 시즌 김성근 전 감독께서 오버스로인 팔 스윙을 스리쿼터에 가깝게 내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그 팔 스윙을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제 공이 빨라지더군요”.

올 시즌 계투 요원으로 활약한 박희수인만큼 그의 공헌도는 기록보다 승부처에서 얼마나 임팩트있는 모습을 보여줬는지 면에서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내심 지난 10월 11일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6회 2-0으로 앞선 순간 나지완-이범호를 삼진으로 잡아낸 장면을 떠올리며 질문했으나 더 파급력이 컸던 순간을 잊고 있었다.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10월 19일) 8회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1-0 박빙 리드 중이었고 선두타자 전준우에게 안타를 내줘서 나름 긴장하고 있었어요. 다음 타자도 이대호-홍성흔 선배였고. 그런데 그 선배들을 다 삼진으로 잡아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게다가 전준우는 2루 도루를 실패하며 공수교대로 이어졌어요”. 한국시리즈 티켓의 한 귀퉁이가 SK 쪽으로 기울어졌던 그 경기를 잊지 못한 박희수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SK 투수진은 확실히 취약해졌다. 확실한 승리 공식이 되어주던 이승호(20번)와 정대현이 모두 롯데로 이적했고 좌완 전병두는 어깨 인대 재건 수술을 받고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다. 송은범-엄정욱은 나란히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필승계투 정우람이 다음 시즌에도 건재하고 에이스 김광현이 부활 의지를 불태우며 새 외국인 투수 마리오 산티아고가 가세하지만 누수가 큰 편이다. 그만큼 박희수의 책임감도 크다.
“이만수 감독께서 ‘선발로도 뛸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라고 하셨어요. 보직을 한정짓고 생각지 않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짝하는 투수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올 시즌 잘했다는 평가를 들어도 다음 시즌에 못하면 결국 ‘반짝 투수’가 되는 거잖아요. 반짝하고 사라지는 투수가 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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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