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논란' 과연 네티즌만 욕먹을 일이었나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1.12.17 10: 52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성폭행 당한 딸, 그걸 밝힌 아버지, 그렇게 몰고간 네티즌.' 한 조간신문의 17일자 1면 톱기사 제목이다. '나영이 논란'을 부른 가수 알리의 전날 저녁 긴급기자회견을 다룬 기사에서다.
제목만 읽는 독자들이라면 이 기사를 보고 '또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사고 쳤거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성폭행 당한 딸의 아픈 과거를 들춰내며 고개 숙인 아버지와 옆에서 양손으로 얼굴 가리고 우는 딸의 사진에서 분노를 느꼈을 게 분명하다. '이런 네티즌 OO놈들' 하면서...
그러나 이번 사태의 실상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논란의 발단 자체를 알리가 제공했고 또 이날 알리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성폭행당한 여성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성폭행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웃어넘기며 사과까지 거부하는 현실이 천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알리 측 회견에 따르면 알리를 심하게 때리고 성폭행한 범인은 집행유예로 바로 풀려났다.)

먼저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알리에 대한 동정론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알리가 어린 나이에 인생에 씻지못할 멍에를 걸머지게 된 아동성폭행 피해자 나영이 이름을 자신의 노래가사 속에 성폭력과 연관시켜 담은 사실은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특히 문제가 된 '나영이' 노랫말 속 '청춘을 버린 채 몸 팔아 영 팔아 빼앗겨버린 불쌍한 너의 인생아' 부분은 전후설명 없이 처음 듣는 이들로 하여금 반감을 살수밖에 없다. 국민 대부분이 나영이 사건으로 분개한지가 엊그제인데 왜 이런 노랫말을 적었지? 노이즈 마케팅을 이 따위로 하나?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그래도 알리가 이번 논란에 발빠르게, 그리고 진심으로 사죄하며 용서를 구하면서 오해가 풀린 점은 다행스럽다. 알리의 소속사 예당 측은 지난 14일 '나영이'의 음원을 삭제하고 이 노래가 포함된 첫번째 정규앨범을 전량 수거, 폐기 조치했다.
노래 가사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보인다는 손가락질에 대해서도 알리는 "가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파렴치한 인격을 비판한 것"이라며 "하지만 정확한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은 전적으로 노래를 만든 내 과오"라고 고개 숙였다.
나영이(가명)와 나영이 부모에 대한 사죄도 잊지 않았다.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나영님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의도가 어떠했든 이번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아픈 상처를 되새겼을 것을"이라고 했다.
알리의 잇딴 사죄 후에도 네티즌 여론은 계속 들끓었다. 결국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평생 안고갔어야 할 비밀을 공개했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런 과거를 알지못했던 때에는 왜 영리 목적의 앨범 노랫속 가사에 이런 대목을 넣었냐 하는 의문이 계속 네티즌 머리에서 맴돌았을 것도 자명한 이치다. 똑같은 성폭행 피해자이고 성폭력을 상기시킬 어떤 언급에서도 멀리 떨어지고 싶었을 나영이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또한번 회자되는 건 이들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일런지...
이런 배경 속에 생성됐던 네티즌 여론을 갑자기 지금와서 '너희들 때문에 알리가...'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또다른 희생양을 찾는 언론의 몰염치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전체 네티즌을 욕되게 하는 소수 악플러들이 지금도 인터넷 곳곳에서 열심히 활동(?)중인 게 사실이고 알리가 사죄 후에도 이들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난도질 때문에 "평생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비밀"이라고 생각했던 성폭행 과거까지 털어놓은 점은 여전히 우리 인터넷 문화의 숙제로 남아 있다.
[엔터테인먼트 팀장]mcgwir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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