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모 구단 선수 A씨는 12월 비활동 기간에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체력 훈련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할 수 있지만 기술 훈련은 불가능하다. 집에서 10여 분 떨어진 곳에 모교가 있어도 발길을 끊은지 오래다.
A씨는 "모교에 가면 부담만 커진다"고 푸념했다. 모교 측에서 과도하게 요구한다는게 그의 설명. 사인볼 요구는 애교에 불과하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처럼 말만 하면 다 되는 것으로 여긴단다. 저연봉 선수인 A씨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는 "억대 연봉 선수라면 마음 편히 지갑을 열겠지만 사실 쉽지 않다. 그래도 프로 선수니까 말만 하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동료 선수들에게 용품을 거둬 가져오라고 하거나 특정 선수를 지칭해 그 선수의 용품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모교 측에서 전화오면 부담이 돼 피하기도 한다"고 털어 놓았다.

타 구단 선수 B씨 역시 마찬가지. B씨는 모교를 대표하는 선수지만 모교의 각종 행사에 절대로 참가하지 않는다. 동창회비를 납부하는게 전부다. B씨는 모교 측의 과도한 요구에 정중히 거절 의사를 표시한 뒤 "너 많이 컸다"는 인격을 비하하는 표현부터 "소속 구단 코치에게 이야기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을 받았다.
B씨는 "후배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도 강압적인 요구에 그럴 마음이 사라진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2군에 머무를땐 아는 척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그러니까 참 씁쓸하다"고 혀를 찼다.
수도권 모 구단에 소속된 강타자 C씨는 몇 년 전 모교에 10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기부할 예정이었으나 총동창회 측에서 "연봉이 얼만데 그것 밖에 안 하냐"고 따지는 바람에 없던 일로 했단다. 그리고 C씨가 모교가 아닌 타 학교에서 개인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모교 측의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마치 반역자로 몰아 세웠다는게 측근의 귀띔.
아마야구인들도 할 말은 많다. 중학교 야구부 감독 D씨는 "빈약한 지원 속에 모교 출신 선수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라며 "옛날과는 달리 선수들의 애교심도 사라지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또한 그는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된 뒤 연고 구단의 지원이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아마 측의 문제로만 볼 순 없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E씨 역시 "과거에는 프로 선수들이 시즌 중에도 모교에 와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며 "선수들이 좀 더 넓게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부담과 애교심 사이에 해법은 무엇일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해야할 듯 하다. 학교측은 모교 출신들이 마음편하게 훈련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선수들은 후배들을 위한 마음으로 학교를 찾아갈 때 잡음은 없어진다. 프로선수들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모교 방문 기회를 갖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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