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감독의 경질이 꼭 그렇게 기습적으로 이뤄져야 했는가?".
차범근(58) 전 수원 삼성 감독이 지난 18일 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C로그를 통해 남긴 말이다.
독일에 체류 중인 차 감독은 조광래(57) 전 대표팀 감독의 경질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며 "98년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간다"고 과거의 아픔을 떠올렸다.

차 감독은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대회 기간 중 하차하는 설움을 겪은 바 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1-3,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로 패하면서 경질됐다.
그의 지휘봉을 빼앗은 인물은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과 조중연 현 회장(당시 전무이사 겸 기술위원장)이다. 정몽준 전 회장은 대한축구협회를 떠나면서 "기술위가 경질을 요청했기에 수락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기술위원들은 조중연 회장이 "회장이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밀실 행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운영 규칙 11조에서 '각급 대표단의 감독은 기술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고 명시했지만, 밀실 행정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차 감독은 "조 감독의 경질이 꼭 그렇게 기습적으로 이뤄져야 했는가? 나는 그게 가장 안타깝다"고 운을 뗀 뒤 "정몽준 의원이 축구협회 회장을 떠날 때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차범근의 경질이 자신에게도 쇼크였다고 굳이 끄집어 내서 발언한 후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조중연 회장도 여러 경로를 통해 얘기한다고 들었다. 차범근에게 죽을 죄를 졌다고. 그런데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 왜 그렇게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 감독은 이어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는 젊다. 나 역시 많은 기대를 했다. 아끼고 싶은 후배였다. 그러나 그 나이에 그렇게 상식과 원칙을 우습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정말 큰 유감이다. 왜 세상이 젊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지지하는가? 그들에게는 나이 때문에 무뎌지는 양식의 날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차범근 감독은 마지막으로 "경질이라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가 덜 되는 길을 고민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전쟁터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니까 아프다"는 맺음말을 남겼다.
◇ 차범근 감독의 메시지 전문
독일에서 아침식사를 하다가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리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수없이 와있었더니
아마도 그얘기를 전해줄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98년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힘들었고 지금도 참기 힘든 기억이지만
세월은 많은 것들을 잊게해주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 다행이다. 물론 이 모든것들을 잊는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아들 두리다. 아마 두리가 없었다면 내가 축구계에 몸을 담그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조감독의 경질이 꼭 그렇게 기습적으로 이루어져야 했을까? 나는 그게 가장 안타깝다.
98년 나의 경질이 이루어 지고나서 가장 큰 피해자는 차범근이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정치인 정몽준과 축구인 조중연이다. 그 두사람에게도 '차범근을 경질시킨 사람들'이라는 쉽지않은 상처가 늘 따라다닌다. 나에게 그들을 욕하는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때면 그들이 받고있는 상처가 작지않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몽준 의원이 축구협회 회장을 떠날 때 자신의 재임기간중에 '차범근의 경질'이 자신에게도 쇼크였다고 굳이 끄집어 내서 발언한후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아마도 꼭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조중연 회장도 여러경로를 통해 얘기한다고 들었다.'차범근에게 죽을 죄를 졌다'고.
그런데 그런일이 또 일어났다.
그렇게 기습적으로 처리해야만 하는 사안이 절대 아님에도 .......
왜 그렇게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뒤늦게 귀국해서 여기저기 연락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그러니 이러저러한 억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닌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는 젊다.
나역시 많은 기대를 했다. 아끼고 싶은 후배였다.
그러나 그 나이에 그렇게 상식과 원칙을 우습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정말 큰 유감이다. 왜 세상이 젊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지지하는가? 그들에게는 나이때문에 무디어지는 양식의 날이 아직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김어준.
그 친구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것도 98년이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자기가 딴지일보총수[?:웃긴다]라며 '차범근을 죽여라'라는 칼럼을 썼다. 흐흐흐. 통쾌했고 아펐다. 아직도 단 한 차례 만나 적은 없다. 그러나 당시 세상의 모든 언론이 나에게 등을 보일 때 세상을 향해 울부짓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못잊고 있다가 요즘 부쩍 자주 듣게되서 기분이 묘하기도 하다.
조광래,조중연,황보관....
모두 축구계에서는 큰 인물들이다.
'경질'이라는 어쩔수 없는 결정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가 덜되는 길을 고민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전쟁터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니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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