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통치를 휘둘러오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사망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남북관계에 어떤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북한은 일단 지난해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쳐 지도자의 공백에서 오는 위기탈출에 온 힘을 경주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김정은 시대의 개막이 과연 북한 야구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야구는 미국에서 유래한 종목입니다. '메이저리그'로 대표되는 미국 야구는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 최대한 많은 돈을 쓰도록 철저하게 설계된 동시에 최적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경기장 등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공산권에서 야구를 따로 배척하지는 않는데요. '아마 최강'으로 군림했던 쿠바만 하더라도 공산주의 국가이며 한때 중국도 여자 소프트볼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온 것이라면 모두 배척할 것만 같은 북한에서도 한때 야구를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야구연맹(IBAF)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북한 역시 연맹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북한야구협회 위치는 '평양시 만경대 광복로 금송동-2'로 명시되어 있군요. 북한은 1985년 협회를 창설해 1988년 전국인민체육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1990년 아시아야구연맹에 가입했습니다.

북한에 야구가 보급된 계기는 김일성의 의중이 컸습니다. 80년대 말 냉전체제가 무너지며 공산권이 급격하게 기울자 북한은 개방의 필요성을 느꼈고, 급기야 1987년 북한은 김일성의 지시로 야구개방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탁구가 미국과 중국의 장벽을 녹였듯이 북한은 야구를 통해 갈등 해소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해 체제 선전을 하고자 했던 것도 한 이유였습니다.
김일성의 지시 아래 북한 야구팀은 맹훈련을 소화한 뒤 국제무대에 데뷔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첫 국제 대회였던 1991년 '환동해 야구대회'서 북한은 한국 대표 한양대에 1-16으로 크게 졌습니다. 연이어 한국, 중국, 대만 등에 대패를 당하며 '승점 자판기'의 수모를 당하던 북한은 결국 1993년 제1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국제대회서 모습을 감춥니다.
이듬해인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아들 김정일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김정일이 북한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시기와 야구가 사라진 시기가 일치합니다. 그리고 올해까지 17년동안 북한 야구는 철저히 베일에 싸인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야구연맹은 북한에 회비를 납부하라는 서신을 매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1993년 이후 회비를 단 한번도 납부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김정일이 통치하던 17년동안 북한은 야구와는 단절된 채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이 야구를 잊은 건 아닙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때는 국내 한 언론을 통해 북한 스포츠 관계자가 한국과 중국의 야구에 관심을 보이며 영상을 찍어 간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됩니다. 당분간은 체제 안정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해외 유학을 하며 또 다른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프로농구(NBA)를 즐겨 보았다는 김정은이 야구에 관심을 쏟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2013년 열릴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예선에 북한이 참가해 야구에서도 남북대결이 펼쳐지길 기대해 봅니다.
/신천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