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8월 8일 밤 12시께 서울 압구정동 모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눈물왕자' 이형종(22, 전 LG 트윈스 투수)을 만났다.
당시 이형종은 다짜고짜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팀에서 휴가를 받았던 상태였지만, 팀을 무단이탈했다는 말이 나돌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로 야구를 그만두지 말라"고 사정했다. 다 떠나서 야구에 대한 그의 재능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캔커피 하나를 들고 2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잘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8월 10일 이형종은 LG 구단에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달하고 임의탈퇴됐다.
지난 2008년 LG에 입단한 이형종은 가장 촉망 받은 유망주 투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교시절까지 항상 최고의 위치에서 야구를 했던 이형종. 특히 그는 2007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에서 역투를 한 뒤 아쉽게 팀이 패하자 마운드 위에서 엉엉 울면서 '눈물왕자'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그러나 LG 입단 후 곧바로 팔꿈치 토미존 수술을 받은 이형종은 2년 6개월에 걸친 긴 재활을 통해 지난해 5월 16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와 경기에 프로에 데뷔했다. '재활'이라는 시련의 시간을 슬기롭게 이겨낸 덕분에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된 이형종은 당시 잠실야구장 내 2만 7000명의 관중들 앞에 마운드에 섰다.
이형종은 이날 마운드에 올라 5이닝 동안 2실점으로 호투하며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다시 기회를 준 LG 트윈스 팬들과 선수들, 그리고 코칭스태프에게 '속죄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 팔꿈치 통증이 재발한 그는 8월 10일자로 임의탈퇴로 공시됐다.
임의탈퇴가 되고 1년여 시간이 흐른 지난 8월 4일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온 전화가 아니었다. 미국국가번호가 찍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형종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토미존 수술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국에 가서 다시 연락 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1년여 시간이 지난 9월 16일 서울에서 이형종을 다시 만났다. 그는 오른 팔에는 팔꿈치를 고정하는 기구를 차고 있었다. 9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조브클리닉'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지난 2009년에 이어 두 번째 수술이었다. 수술은 그에게 야구 선수로서 복귀를 의미했다. 이후 세 달 동안 재활을 한 이형종을 지난 14일에 다시 만나 어떻게 지냈는지 들어봤다.
-야구를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인가?
▲ 팔이 너무 아팠다. 사실 지난해 LG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질 때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괜찮다고 이야기 하면서 던졌다. 다시 야구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던지고 싶었다.
넥센과 시범경기 때 던질 때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개막전 1군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고 2군 경기에 등판해 1루 견제를 하다 팔꿈치가 이상했다. 견제구를 던지는데 팔꿈치에서 뚝 소리가 났다. 다시 재활을 하고 두 경기 정도 잘 던져 1군에 올라왔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롯데와 경기였는데 잠실구장이 꽉 찼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프지만 참고 던졌다. 첫 경기는 괜찮았다. 그런데 첫 경기를 던지고 나서 회복이 더뎌 일주일 만에 그 다음 경기에 등판했다. 두산전이었다.
이날은 경기 전부터 팔이 너무 아팠다. 아프다고 말하면 또 다시 2군에 내려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재활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꾹 참고 던졌다. 1회에 140km를 겨우 넘겼다. 2회에도 비슷했다. 그런데 경기 초반 타자들이 점수를 뽑아줘 5회만 넘기면 승리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팔이 끊어져라 던졌다. 5회에 150km까지 나오더라. 아쉽게 승리투수도 되지 못했다.

이후에 2군으로 내려갔다. 또 다시 재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또 다시 수술을 해야 했다. 긴 재활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타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구단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 역시도 이해는 갔지만 나는 타자를 해서라도 야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2주 넘게 구단에게 사정했다.
그랬더니 구단에서 내게 2주간 휴가를 줬다. 머리를 식히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3일 정도 지나서 이형종이 팀을 무단 이탈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걸로 난 또 문제아로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작년에 놀이터에서 새벽에 2시간 넘게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너무 힘들었다. 야구를 계속 하고 싶기도 했지만 심리적인 부담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야구 안 하면 뭐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 야구 그만두고 뭐했나?
▲ 골프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만두자마자 골프를 시작했다. 9월부터 세미프로지도를 받았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골프만 쳤다. 야구를 해서 그런지 골프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6개월 만에 세미프로대회에 나가 78타를 쳤다. 77타가 커트라인인데 1타 차이로 떨어졌다.
재미있었던 점은 골프를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야구로 가득했다. 골프를 같이 치던 주변 친구들도 나를 골프 선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올 초 LG가 잘 나가자 친구들은 계속 야구 이야기만 했다. LG이야기였다. LG 왜 이렇게 잘하냐? '누구랑 친하냐' 부터 '잘 생겼냐' 까지 물어봤다. 온통 LG에 대한 말 뿐이었다. 같이 밥 먹을 때에도 훈련을 할 때에도 나에게는 야구 이야기만 했다. 주변에서 진짜로 야구를 했냐면서 골프공으로 한번 던져보라고 했다.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으로 그물을 향해 던져줬다. 날 보고 야구 선수였던 것 같다며 웃더라.
이렇게 골프를 5월까지 쳤다. 그런데 골프를 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야구가 내 머릿속과 가슴속에 들어와 있었다. 다시 야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에 골프를 그만뒀다.
6월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우 단순한 일이었다. 잔 심부름으로 물건을 건네주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달 동안 3일 쉬었다. 그런데 12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야구를 할 때 최저 연봉이 2400만원이었다. 재활을 해도 이 돈은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이 돈을 받는 것이 부끄러웠다. 나보다 더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이 받았다. 그런데 야구를 그만두고 밖에서 더 힘들게 일했는데 이보다 못 받았다. 이렇게 한달 반 동안 일을 하고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 골프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얼마나 들었나?
▲ 정말 많이 들었다. 처음에 골프채 세트를 구입했는데 문제가 생겨 또 다시 사야 했다. 골프를 친 9개월 동안 6000만원 정도 들었다. 남은 돈 조금하고 지인께서 도와주셨다. 아버지와 친척들도 도와주셨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비도 많이 나왔다. 이것 역시 아는 분께서 도와주셨다. 과거에 LG에서 심리 상담을 해주신 분이 계셨다. 어머니, 이모님 같은 분이신데 그분께서 도와주셨다. 내가 다시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좋아하셨다. 수술비도 2000만원 정도 들었다. 1년 동안 내가 번 돈은 160만원이었고, 쓴 돈은 8000만원 정도 됐다. 아마 이 분이 안 계셨다면 다시 야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말 감사하다.

- 수술은 어디서 받았나?
▲ 미국 캘리포니아 조브 클리닉에서 받았다. 봉중근 선배를 시술하셨던 요컴 박사가 해주셨다. 내 팔꿈치를 보시더니 첫 수술 때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전보다 더 길게 내 오른 손목 부위 인대를 잘라서 이식했다. 운 좋게 뼛조각도 발견해서 함께 제거 했다. 섬유질도 걷어 냈다. 수술이 잘 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믿고 있다. 지금은 고정기도 떼고 가볍게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 수술 후 느낌이 좋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 사실 1차 수술을 마치고서는 너무 아팠다. 30분 정도 지나서 마취가 풀렸는데 너무 아파 진통제를 계속 먹었다. 그런데 2차 수술 때는 수술 후 눈을 떴는데 통증이 없었다. 요컴 박사가 수술 끝났으니까 집에 가라고 했다. 난 무서운 마음에 30분만 있다 가겠다고 했다. 30분이 흘렀는데도 통증이 없었다. 그래서 느낌이 좋다는 말을 한 것이다.
- 수술도 중요하지만 재활을 어떻게 하고 있나? LG에서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 한국에 와서 R&C라는 재활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았다. 원장님께서 돈 안 받을 테니 열심히 재활하라고 하셨다. 정말 감사했다. 얼마 전부터는 김병곤 전 LG 트레이너가 개원한 곳으로 옮겼다. 나중에 꼭 다시 돈을 벌어서 갚아 드릴 것이다. 지금은 가벼운 웨이트를 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 야구를 다시 하고 싶다. 그래서 수술도 받았다. 현재 머릿속엔 야구복귀에 대한 생각 뿐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재활하면서 몸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 힘든 시간들을 거치면서 야구에 대한 마음과 열정을 깨닫게 됐다. 김진우 선배의 복귀도 내게 용기가 됐다.
- LG팬들에게 이형종은 애증과 같은 선수다. 지난해 승리를 거뒀을 때 모습은 최고였다. 그러나 이후 작은 사고도 있었다.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정말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야구장에서 멋진 야구선수가 되겠다. 실수들을 잊어달라고 하지 않겠다. 앞으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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