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냉혹한 전쟁터다".
31년이라는 감독 경험을 지닌 김응룡(70) 전 해태, 삼성 감독에게도 프로 세계는 무서운 곳이었다.
김 전 감독은 지난 20일 방송된 KBS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해 55년간의 야구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생애 첫 토크쇼 출연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항상 사표를 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섰다. 프로는 냉혹한 전쟁터기 때문에 언제든 책임지고 물러날 각오로 임했다"고 말했다. 감독 재임 기간 31년 동안 맡은 팀을 10번이나 우승시킨 명장답지 않은 발언이었다.
김 전 감독은 1983 시즌부터 1999 시즌까지 해태를 맡아 9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어 2000년 삼성 감독으로 취임한 뒤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우승을 만들어내며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감독으로서 10번, 사장으로서 2번, 고문으로서 1번의 우승을 경험한 프로야구의 산 증인이다.
그런 그에게도 야구는 두려움이었다. 김 전 감독은 "선수들 앞에서는 흔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31년의 감독 생활에도 야구장에 나서기 전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긴장했다. 혹시 아플까 무서워 건강검진도 65살 때 처음 받았다. 용종이 7개나 발견됐었다"고 예전을 회상했다.
김 전 감독은 이어 "명장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선수들 덕에 우승한 운 좋은 감독에 불과하다. 그리고 질 때도 많았다.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곤 했다. 경기에 지면 너무 화가 나서 잠도 오지 않아 술을 한 잔씩 하고 자야 했다"며 '우승청부사'라는 화려한 별명 뒤 가려졌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 전 감독은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했다. 자율야구를 처음 시작한 감독도 그였다. 김 전 감독은 "프로야구에서 감독이 선수를 안 믿으면 누가 믿나. 훈련 때 5%도 간섭하지 않고 코치와 선수들에게 맡겨뒀다. 나는 선동열에게도 그만 던지라거나 더 던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만큼만 던지게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역대 감독 중 최다인 18번의 퇴장 기록을 가진 김 전 감독은 "팬들을 위한 제스처였다. 만약 0:10으로 지고 있어도 감독이 적극적으로 어필에 나서면 팬들은 '우리 감독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고 유독 많았던 항의 이유를 밝혔다.
선수들에게 누구보다도 무서운 '호랑이 감독'이었고 야구계에서는 '명장'이라 불린 김응룡 전 감독. 그러나 그도 냉혹한 승패의 세계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 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 그를 '우승청부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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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