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합니다'.
이 말은 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다. 삶 속에서 쉽게 결정내리기 힘든 일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코너의 이름은 애정남, 바로 '애매한 것 정해주는 남자'다. 여기서 '애정남'은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친구에게 빌려준 돈 재촉은 언제 해도 좋은지를 다 정해준다.
야구에도 '애정남'이 존재한다. 그라운드에서 '애매한 것을 정하는' 사람이 심판이라면 그라운드 바깥에서는 바로 공식 기록위원들이 정한다. 기록위원은 애매한 타구에 대해 안타와 실책을 정하고, 애매한 상황에서 자책점과 승리투수를 결정한다. 수많은 변수가 실시간으로 발생되는 종목인만큼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필수다.

그라운드에서 숱한 경험을 쌓으며 온갖 상황을 다 겪은 이들이지만 쉽사리 결정내리기 힘든 상황도 있다. 승리투수의 결정, 안타와 실책의 판단, 기습 번트와 희생 번트, 자책점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은 기록위원들을 장고에 빠지게 한다. 매년 12월 각 구단의 전력분석, 기록원들과 KBO 공식 기록원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합동 세미나를 갖고 기록판정에 대한 토의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렇다면 기록위원들이 가장 판단을 하기 힘든 기록은 무엇일까. 매년 겨울 기록강습회를 진행하는 KBO 이주헌 기록위원은 "제일 어려운 부분은 바로 경기의 승리투수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록원들은 승리투수와 관련해 토의를 많이 하는데 전체 주제의 절반 이상이 될 때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록위원이 말하는 '승리투수'의 결정은 선발이 아닌 구원투수의 승리 부여 여부다. 선발투수는 5이닝을 채우고 투구를 마쳤을 때 팀이 이기고 있고, 한 번도 상대팀에 리드를 내 주지 않은 채 경기가 끝나면 승리를 따낼 수 있다. 반면 구원투수가 승리투수가 되는 조건은 까다롭다. 선발투수가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가면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펼친 구원투수에 승리가 돌아간다. 혹은 경기에서 지고 있거나 동점일 때 등판해 경기가 역전되면 그 투수에 승리가 부여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지만 '효과적인 투구'라는 부분은 어쩔 수없이 기록원의 주관이 들어가야 한다. 너무나 많은 변수 때문에 '몇 이닝 몇 실점 이하' 등 구원투수의 승리 부여를 위한 정확한 기준을 만들기가 사실상 어렵다. 또한 단순히 경기가 뒤집히는 순간에 마운드에 있었다고 해서 승리가 돌아가는 건 아니다.
이 기록위원은 "선발이 먼저 내려가고 뒤에 나온 투수들의 투구 내용이 엇비슷할 경우 일단 먼저 등판한 구원투수에 가산점이 붙는다"면서 "그렇지만 무조건 먼저 나온다고 승리를 주지는 않는다. 투수들 간의 이닝 차이가 많이 나면 또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에게 승리를 준다. 대략적인 이닝 차이의 기준은 2이닝 정도로 잡고 있다. 하지만 뒤에 나온 투수가 정말 빼어난 피칭을 했는데 1⅔이닝만 던졌다고 승리를 안 줄수는 없다. 결국 경기의 흐름을 봐야 할 문제이기에 가장 골머리가 아픈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구원투수의 승리 여부를 결정하는 우선순위는 어떻게 될까. 이 기록위원은 "중요한 건 승 포인트다. 경기가 뒤집히거나 앞서 나가는 순간 마운드에 있는 투수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올해 7월 1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삼성의 경기. 이날 삼성은 5회까지 4-1로 앞서 있었고 6회 곧바로 안지만을 마운드에 올리지만 안지만은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동점을 내주고 만다. 삼성은 곧바로 7회 반격서 점수를 올렸기에 승 포인트를 가진 투수는 안지만. 그렇지만 승리는 안지만이 아니라 그 뒤에 나와 2이닝 무실점으로 잘 던진 정현욱에 돌아갔다.
그래서 그 다음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록위원은 "구원 투수들이 비슷한 투구 내용을 보였다면 승 포인트 다음으로 고려되는 판단 기준은 투구 내용-등판 순서-많은 이닝 소화 등이다. 근데 또 이게 절대적이지 않다. 100% 수학 공식처럼 나오는 게 아니라 네 가지 기준을 복합적으로 판단해 승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경우는 경기가 끝난 뒤 투수 이름 앞에 'W(승리 투수)'를 써 넣지 못해 10분 정도 고민할 때도 있다"며 결정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 외에도 올해 프로야구에는 숱한 애매한 상황들이 나왔다. 평범한 타구가 선수의 유니폼 속으로 들어간 경우도 있었고, 홈 스틸 성공 여부를 놓고 기록위원과 구단 기록원 사이에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야구가 더욱 재미있는 건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정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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