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명품 조연’ 고창석의 한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여름 개봉한 100억 대작 ‘고지전’과 ‘퀵’에 동시에 출연하며 말 그대로 명품 연기를 선보였고,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 ‘1박2일-명품 조연편’에 출연하며 전 세대에 걸쳐 ‘고창석’이란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뿐인가. 지난 11월 개봉한 ‘Mr.아이돌’에선 불혹을 넘긴 나이에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충무로 신 희극지왕으로 등극했다. 올해 관객들에게 선보인 영화보다 내년 선보일 영화가 더 많다는 점도 그가 현재 충무로 ‘대세’임을 입증하는 대목.
그는 올해 류승범, 김옥빈 등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한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와 고현정, 박신양, 유해진, 성동일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배우들이 총 출동하는 ‘미쓰고’ 촬영을 이미 마쳤다.

현재는 차태현의 첫 사극 도전으로 기대를 모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중. 또 연말엔 송새벽의 스크린 복귀작 ‘아부의 왕’ 촬영에 돌입하고, 내년엔 이명세 감독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작품 촬영에 들어간다.
고창석은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아 보이지만 틈틈이 후배들의 공연, 경조사도 잊지 않는다. 배우로서 가장 큰 재산은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신념 때문이다.
“요즘은 후배들 공연 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나도 예전에 겪어봐서 잘 안다. 선배들의 역할은 연기를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힘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인들의 공연이나 경조사에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연기도 사람이 하는 일,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요새는 다들 연기를 잘하지 않나.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이 다음에 다시 만나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올해 개봉한 영화만 3개, 내년 개봉 예정으로 촬영했거나 진행 중인 작품은 무려 4개다. 2011년에만 무려 7편의 작품을 소화한 것. 서로 다른 캐릭터, 작품을 끌어안는다는 게 연기로 잔뼈가 굵은 그이지만 쉽지는 않을 터. 고창석 만의 비법이 있는 걸까.
“연기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작업은 작품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 설정하는 일이다. 감독님, 의상, 분장팀들과 인물의 콘셉트에 대해 상의하고 고민하다보면 작품 속 캐릭터가 어떤 인물일지 보인다. 그리고 나면 연기는 한결 수월하다.”
고창석은 배우 한 사람의 연기력보다 영화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 모든 사람들의 협력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배우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재료일 뿐이라는 게 그가 지켜 온 연기관이다.
“배우는 날 것의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재료가 얼마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느냐, 그게 배우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재료를 지지든, 볶든 그건 감독의 몫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여장을 하든, 발가벗고 뛰든 난 별로 게의 치 않는다. 감독이 하라면 해야지. 또 일단 돈을 받았지 않나.(웃음)”
좋은 작품의 시나리오가 고창석에게 몰리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감독 속을 안 썩여서”라며 호탕하게 농을 치는 그는 자신을 녹여 작품의 맛을 낼 줄 아는 진정한 연기 고수였다.
영화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며 올 한해를 고창석의 해로 만든 그에게 2011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올해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또 다른 통로를 발견한 것 같다. 영화만 했을 때보다 예능을 하고 나니 대중에게 한 발 다가섰다는 느낌이 들더라. 하지만 예능은 나에겐 하나의 팬 서비스 같은 것일 뿐, 더 많이 하진 않을 계획이다. 많이 한다면 결코 서비스가 아니지 않나.”

이제 충무로에서 없어 선 안 될 존재로 입지를 확고히 다진 그에게 앞으로 배우로서 갖는 목표에 대해 물었다.
“인기는 좀 있으면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웃음). ‘명품 조연’이라고 불러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수식어가 붙어서 책임감이 더 드는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신선한, 좋은 재료로 오래 가야겠다는 마음이다. 내년엔 영화를 많이 하지 않을 계획이다. 쉬어간다는 의미 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주변에선 떴을 때 한 몫 챙기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지만 조금 천천히, 오래 갈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에 신경 쓰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창석은 다시 연극 무대를 찾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시간이 지나 직장인들이 업무상 재교육을 받듯, 고창석은 배우에게도 재교육,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은 올해보다 영화 편수를 줄이겠다는 계획이 있다. 작품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영화만 출연하겠다는 건 아니다. 작은 역할이라도 재미있다면 할 생각이다. 대신, 내년엔 꼭 무대 공연에 서고 싶다. 공연을 못한지 벌써 2년 가까이 된다. 내가 공연을 매우 잘해서라기보다 공연은 배우에겐 매우 생산적인 부부들이 많다. 배우에게도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년에는 꼭 공연을 하고 싶다.”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배우, 잠시 쉬더라도 장기적으로 더 생산적인 길을 선택할 줄 아는 배우 고창석. 그는 앞으로 충무로가 기댈 수 있는 거목(巨木)으로, 관객들이 다시 보고 싶은 명배우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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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별미디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