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내가 1등?', 좀 더 많은 기록에 목마른 야구계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1.12.26 07: 02

"제가 정말 1등인가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올 시즌 전체 진루타 1위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손아섭(23)의 이야기이다. (주)스포츠투아이에서 제공한 기록에 따르면 손아섭은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볼넷, 몸에 맞는 볼을 제외하고 모두 115번 진루타를 기록했다. 손아섭이 올 시즌 주자가 있는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 건 모두 233차례. 무려 절반 가까이 주자의 진루를 성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손아섭은 본인이 진루타 부문 1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정말 1위를 한 것이 맞냐"면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록"이라고 답했다. LG에서 내년 시즌부터 '팀 배팅 코치'라는 새로운 보직을 신설 할만큼 주자를 한 베이스 더 진루시키는 팀 배팅은 승리를 위한 필수요소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선수가 팀 배팅에 뛰어난지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

▲ 'WS(승리 기여도), 맞상대 성적 등은 어디에?'
현재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www.koreabaseball.com)에서는 야구 기록 전반에 관련된 자료를 팬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기록 항목이 추가되고 있지만 높아져만 가는 야구팬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특정 투수와 타자의 맞상대 성적이 빠져있는 점은 아쉽다. 올 시즌 투수부문 4관왕을 차지한 KIA 윤석민과 타자부문 3관왕 삼성 최형우의 상대 성적은 어떻게 될까.(최형우는 윤석민을 상대로 타율 0.556, OPS 1.801, 18타수 10안타 4홈런 7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WS(윈 쉐어, Win Shares)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WS는 미국의 야구 통계학자 빌 제임스가 고안해 낸 것으로 특정 선수의 승리 기여도를 나타낸 것이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특정 선수의 승리 기여도를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지난해 신연봉제를 실시한 LG는 자체적으로 산출해 낸 WS를 연봉 협상할 때 대거 반영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자료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 기록에 대한 저작권은 (주)스포츠투아이가 가지고 있다. 중계방송 등을 통해 제공되는 여러 상황별 자료는 모두 이곳에서 제공하고 있다. 가장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는 곳이지만 개인적으로 데이터를 구입하기는 어렵다. 현재 스포츠투아이는 기업이나 단체와만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포츠투아이가 제공하는 여러 야구 기록들은 가공을 거쳐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 팬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 외에도 일반 팬들에게 야구 전반에 관련된 기록을 제공하던 홈페이지는 크게 두 군데가 있다.
우선 스탯티즈(www.statiz.co.kr)는 야구통계학(세이버메트릭스)와 관련된 자료를 포함해 수많은 세부 기록들을 야구팬에게 무료로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앞서 예시로 든 맞상대 성적이나 WS, RC(Run Created, 득점 생산력)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난 7월 야구기록 저작권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며 현재 운영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또한 아이스탯(www.istat.co.kr)은 세이버메트릭스 자료 보다는 상대 기록, 선수의 세부 성적을 쉬운 인터페이스로 제공해 큰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스탯티즈가 문을 닫은 현재로서는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제공하지 않는 야구 기록을 확인할 거의 유일한 곳이다.
▲ 팬, 선수, 구단 모두 원하는 세부 기록
프로야구를 이루는 세 축을 꼽으라면 팬, 선수, 구단을 들 수가 있다. 한국 프로야구를 떠받치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보다 더 많은 야구 기록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20년째 야구를 즐겨보고 있다는 야구팬 허민형(27)씨는 “팬들은 추억을 되새기며 야구에 대한 관심을 더해간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다. 그런 팬들의 추억에 색을 칠하는 건 세부 기록이다. 그렇지만 현재 팬들이 접근 가능한 기록으로는 과거 은퇴 선수들에 대한 세부 기록을 알 수 없기에 아쉽다”고 말했다.
선수에게 세부 기록은 본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외에도 연봉 협상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렇지만 선수들은 당장 연말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제시할 자료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한 선수는 “내 주장에 정당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기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특정 상황의 특정 기록을 수집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자료를 모아주는 아는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예전엔 자료가 잘 모인 사이트가 있어서 쉬웠는데 지금은 문을 닫아서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KBO 홈페이지와 네이버 기록실 등 여러 군데서 자료를 찾는데 쉽지만은 않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구단 역시 마찬가지다. 구단은 스포츠투아이로부터 세부 기록을 구입하기에 열람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선수들과의 소통 부재를 주장했다. 연봉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 구단의 실무자는 “연봉 협상 시 ‘자존심을 세워달라’, ‘누구는 얼마를 받았는데’ 등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하는 선수들과 협상하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차라리 세부 기록을 모두 모아 온 뒤 본인의 주장을 펼치는 선수와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 구단은 기록을 바탕으로 연봉을 책정하기 때문에 기록대 기록으로 선수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합의점을 좀 더 찾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자료를 가지고 오는 선수는 드물다. 그런 자료를 선수가 모으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내년 시즌, 더 많은 기록이 팬들을 찾아온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좀 더 많은 기록을 팬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을 표했다. KBO 이진형 홍보팀장은 “야구팬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기록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다. 현재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되는 기록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보충된 것이다. 내년 시즌에는 좀 더 많은 자료들을 제공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잠시 문을 닫았던 ‘스탯티즈’도 곧 새 단장을 하고 문을 열 예정으로 알려졌다. 스탯티즈 운영자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통해 ‘지난 7월 운영 잠정중단을 한 이후 2개월이 지나 선수협의회에서 연락을 해 왔다’면서 ‘선수협은 스탯티즈를 활용하며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진행하길 원했다. 이미 이사회를 통과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미 선수협에서는 스탯티즈 측에 IT 담당자를 선발하는 등 지원을 하고 있었다. 스탯티즈 운영자는 ‘이미 2011년 업데이트까지 마쳤다’면서 ‘2006년 이전 데이터까지 제공할 예정이다. 선수협과 스포츠투아이 측이 정식으로 계약을 맺는 시점에서 재오픈을 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현재 선수협은 내홍을 수습한 뒤 다시 계약 추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추가적인 기록을 제공하고 개인 및 단체가 운영하는 기록열람 사이트가 운영된다면 야구팬들의 야구에 대한 이해도는 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많은 야구기록의 제공은 야구에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최동원, 장효조, 선동렬, 양준혁이 전설일 수 있는 것은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1987년 5월 16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최동원과 선동렬의 맞대결이 전설로 남은 것 역시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야구계가 발 벗고 나서 기록 충실화에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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