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팀에 금의환향했다. 그의 꿈이 이뤄졌다. 하지만 또 다른 꿈이 남아있다. 모든 선수의 꿈 바로 우승이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8)가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최저연봉 2400만원과 야구발전 기금 6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고향팀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은 박찬호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이다. 1991년 한화 전신 빙그레와 입단 조율에 실패한 뒤 한양대로 진학했던 박찬호는 20년이 지나 고향팀으로 돌아왔다.
오렌지색 유니폼은 박찬호의 오랜 로망이었다. 1973년 충청남도 공주 태생인 박찬호는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차례로 거쳤다. 한양대 2학년을 마친 뒤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계약하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뛰는 동안에도 박찬호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고향을 생각했다.

그는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OB 베어스가 연고팀이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한화 이글스가 앞으로 내가 뛰어야 할 팀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마음속으로 갖고 있는 꿈이자 목표였다. 오렌지색 줄무늬 유니폼이 큰 꿈과 색깔로 자리잡고 있었다"며 추억의 빙그레 줄무늬 유니폼을 떠올렸다. 입단식에서도 박찬호는 '오렌지' 넥타이를 매치했다.
하지만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고 박찬호의 꿈이 끝난 건 아니다. 우승이라는 최후의 꿈이 또 남아있다. 그는 "어느 나라 어느 팀에서든 우승을 목표로 한다. 우승을 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알기 때문에 더 간절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2009년 필라델피아 시절 생애 첫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팀은 뉴욕 양키스에 2승4패로 졌고, 박찬호의 꿈도 좌절됐다.
당시 중간 계투로 활약한 박찬호는 월드시리즈 4경기에서 3⅓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는 "비록 우승은 좌절됐지만 상당히 감격적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는 건 모든 선수에게 부여되는 기회가 아니다. 선수생활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내년 시즌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화가 챔피언이 되는데 한 자리를 지킨다면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호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모든 선수들과 같은 마음이다. 팀의 마지막 경기에 승리하는 걸 꿈꾸고 있다"고 했다. 18년 프로선수 생활 동안 우승을 경험해 보지 못한 박찬호. 그는 1999년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떠올리며 "나에게도 기쁨이었다"고 표현했다. 고향팀에서의 첫 우승. 박찬호는 마지막 남은 꿈·목표를 향해 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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