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윤석환(전 두산 투수코치)이 13승을 거둔 이후 두산 베어스에서는 국내 좌완 한 시즌 10승 투수가 사라졌다. 1990년 구동우 현 NC 코치와 2001년 이혜천이 9승을 올린 것이 두산의 한 시즌 국내 좌완 최다승이었다.
좌완에 목말랐던 두산이 2012시즌에는 좌완 선발을 키우기보다 계투 투입에 중점을 둔다. 이혜천이 올 시즌 중반 왼손 골절상 여파로 아직 재활 중이고 이현승이 지난 26일 상무 입대를 위해 훈련소 입소한 만큼 1군 경험이 일천한 선수들이 남은 가운데 사이드암 김창훈(26)과 2008년 1차 지명 진야곱(22), 2010년 3순위로 입단한 정대현(20)이 기회를 얻을 예정이다.
사실 두산은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이승호(30. 롯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선발-계투로도 풍부한 경험을 갖춘 데다 제구되는 직구와 예리한 슬라이더를 갖춘 만큼 투수진에 힘을 보탤 만한 선수로 점찍었던 것. 그러나 이승호는 두산의 오퍼가 채 닿기 전 롯데와 계약을 맺었다. 그와 함께 두산은 좌완 선발 보강보다 계투진 확충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정명원 두산 신임 투수코치는 다음 시즌 계투진에서 힘을 보탤 만한 투수 유망주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우완 노경은, 조승수와 김강률, 신인 사이드암 변진수가 자질을 갖추고 있다. 왼손 투수로는 김창훈과 진야곱, 정대현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직 전지훈련을 치르지 않은 시점이지만 마무리 훈련서 발견한 가능성으로는 충분한 승산을 갖춘 선수들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좋은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반드시 이기고 싶다'라는 근성과 함께 자율 훈련 기간 동안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근력을 키워 스프링캠프 경쟁 체제를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안 북일고 시절 고교 최고 좌완으로 꼽힌 뒤 2004년 한화 1차지명으로 입단했으나 혹사 후유증과 수술-재활-공익근무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2009년 11월 두산으로 이적했던 김창훈은 올 시즌 사이드암으로 전향, 가능성을 비췄다. 비록 성적은 27경기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6.39에 불과했으나 낯선 투구폼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구속이 빠르지 않아 고민이 많았던 김창훈은 사이드암 팔각도에서 137~8km의 공을 던지고있다.
일본 미야자키 교육리그서 김창훈은 평균자책점 2.25에 8이닝 동안 탈삼진 9개를 솎아내며 원포인트 릴리프 이상의 가능성을 비췄다.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던진 투심의 움직임이 좋았다는 것이 선수와 팀 내 관계자들의 평이다. 기대를 모으며 입단했으나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진야곱은 교육리그서 평균자책점 2.60(17⅓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의외의 변수가 될 투수는 바로 정대현이다. 공은 빠르지 않지만 공격적으로 던지는 스타일의 정대현은 교육리그 참가자 중 가장 많은 28⅓이닝을 소화하며 6실점 5자책으로 평균자책점 1.59로 호투, 훗날 왼손 선발감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 코치는 정대현에 대해 "아직 선발로 뛰기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계투 투입 가능성을 더욱 높게 점쳤다.
저마다 1군에서 시련을 겪었던 투수들인만큼 각오도 남다르다. 3년 전만 해도 어깨-팔꿈치를 모두 수술하며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김창훈은 두산에서 조금씩 제 자리를 만들고 있다. 특히 올 시즌 사이드암 전향을 권유한 김진욱 투수코치가 신임 감독으로 자리했다는 점은 호재다. 자신에게 왜 사이드암 전향을 지시했는지 그 활용법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가 1군 감독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허리 부상으로 인해 2010년 3월 27일 KIA와의 개막전 이후 자취를 감췄던 진야곱은 올 시즌 후반기 2군에서 구위가 좋아지며 군입대도 미루고 다시 도전장을 던진다. 2010년 데뷔 시즌 가능성을 비췄으나 경기 운영 능력에서 한계를 비추며 2군으로 떨어졌던 정대현 또한 이번에는 1군에서 제 자리를 확실히 만들겠다는 각오다.
좌완 에이스에 대한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두산에서도 팀 내 좌완에게 거는 베팅 금액을 줄였다. 그러나 그만큼 미래 가치에 대한 배당률은 큰 편이다. 계투 특화를 위해 사이드스로로 전향한 김창훈 외에 진야곱과 정대현은 당장이 아닌 훗날 선발진에도 가세할 만한 투수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진야곱과 정대현을 계투 후보로 편성한 것은 1군 경기 경험을 쌓아주기 위한 일환이다.
승리 계투조에 편성될 수도 있고 계투 추격조가 될 수도, 아니면 그대로 2군에서 시즌을 마칠 수도 있다. 왼손 투수에 대한 당장의 기대치를 줄인 대신 미래 기대치를 더욱 높인 두산이 '진흙 속 진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farinelli@osen.co.kr
김창훈-진야곱-정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