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순간. 지나고 나면 유독 기억에 남거나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올 한해 프로야구에서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많았다. 8개 구단의 운명을 좌우한 결정적 경기들을 되짚어본다.
▲ 삼성 - 6월28일 잠실 LG전 808일만의 1위 등극
시즌 전 삼성은 4강 후보 정도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6월말까지 삼성은 1위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6월28일 잠실 LG전에서 무려 808일 만에 1위에 등극하며 강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날 경기 내용이 그랬다. 7회까지 1-3으로 뒤졌지만 8·9회 1점씩 따라붙으며 3-3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0회초 김상수의 결승 2루타로 4-3으로 역전시켰다.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10회말 리드를 지키며 경기를 끝냈다. 삼성 불펜은 6회 이후 1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이어 던지기로 막아냈고, 팀 타선도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올해 삼성이 거둔 79승 중 41승이 역전승이었으며 그 중 11승이 8회 이후 뒤집은 경기였다.

▲ SK - 9월9일 문학 롯데전 7점차 역전극 김강민 원맨쇼
8회초까지 SK는 롯데에 1-8로 끌려다니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8회말 대타 안치용의 투런 홈런을 시작으로 9회말 대타 박재홍의 적시타와 김강민의 스리런 홈런으로 1점차까지 따라붙더니 다시 한 번 대타로 나온 박진만의 적시타로 8-8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 10회초 롯데 손아섭에게 솔로 홈런을 맞아 패배 직전에 몰렸지만, 10회말 김강민의 2타점 끝내기 적시타로 10-9 대역전극을 완성시켰다. 무려 7점차를 극복한 대역전쇼였다. 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한 스리런 홈런과 승부를 끝낸 안타를 터뜨린 김강민은 10회초 포수 마스크까지 쓰는 진풍경을 벌였다. 혼자 북치고, 장구친 원맨쇼. 이 같은 SK의 끈질긴 승부는 포스트시즌에서 KIA-롯데를 꺾고, 역대 최다 14경기로 이어졌다.
▲ 롯데 - 10월16일 사직 SK전 PO 1차전 손아섭 병살타
롯데는 최초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KIA와의 준플레이오를 거쳐 올라온 SK를 상대로 기선제압해야 했다. 흐름은 롯데였다. 5-6으로 뒤진 8회말 이대호가 천적 정대현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날리며 포효했다. 여세를 몰아 9회 롯데는 1사 만루 황금찬스를 만들며 경기를 끝낼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믿었던 손아섭이 바뀐 투수 정우람의 초구 높은 체인지업을 끌어당겨 4-6-3 병살타로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롯데는 연장 10회초 정상호에게 결승 솔로 홈런을 맞고 6-7로 아깝게 졌다. 이후 SK와 5차전까지 접전을 벌였지만, 롯데는 1차전의 충격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양승호 감독도 "아무래도 1차전의 패배가 컸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 KIA - 7월26일 광주 삼성전 한기주 블론세이브
전반기 1위는 KIA였다. 조범현 감독은 무리하지 않고 여유 있께 시즌을 운용했다. 최대 약점이었던 마무리 문제도 한기주의 복귀로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후반기 첫 경기부터 2위 삼성에게 대역전패했다. 2-1로 리드하던 8회 2사 1루에서 등판한 한기주가 조영훈-강봉규-신명철-진갑용에게 4연속 안타를 맞고 무너진 것이다. 한기주의 올 시즌 유일한 블론세이브. 그러나 여파가 컸다. 삼성과 후반기 첫 3연전을 모두 내준 KIA는 2위로 주저앉았고 더 이상 1위 자리에 복귀하지 못했다. 후반기 주축 선수들의 거짓말 같은 줄부상으로 반격의 동력을 잃은 것이다. '에이스' 윤석민은 3연전에 등판하지 않았다. 이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이겨놓는 게 최선이란 것이 확인된 경기였다.
▲ 두산 - 5월27일 잠실 한화전 대역전패 충격
역전과 재역전의 팽팽한 승부. 두산은 7회말 최준석의 홈런을 시작으로 김재호-정수빈의 연속 적시타로 10-9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9회초 어이없이 역전을 허용했다. 9회 1사 2루에서 오선진이 볼카운트 2-1에서 정재훈의 4구째 원바운드된 포크볼에 헛스윙했다. 그런데 공이 크게 바운드된 뒤 포수 뒤쪽으로 굴러갔다. 그 순간 포수 용덕한은 공이 아니라 심판에게 갔다. 파울이라는 항의. 그러나 그 순간 2루 주자 추승우가 홈을 밟았고, 오선진은 3루까지 진루했다. 낫아웃 3루타. 강동우에게 결승타를 맞은 두산은 결국 10-11로 역전패했다. 뭔가에 홀린듯한 어이없는 역전패. 우승후보에서 5위로 추락한 두산의 2011시즌을 집약한 한판이었다. 이로부터 17일 후 김경문 감독은 8년간 사령탑을 맡은 두산을 자진사퇴로 떠났다.
▲ LG - 6월17일 잠실 SK전 임찬규 4연속 볼넷
이날 경기 전까지 LG는 34승28패 승률 5할4푼8리로 1위 SK에 3경기 뒤진 4위였다. 5위 롯데에는 4.5경기차. 마무리로 자리 잡은 고졸 신인투수 임찬규의 역할이 컸다. 이날 경기도 임찬규가 마무리 상황에 마운드에 올랐다. 9회초 4-2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임찬규는 1사 1·2루에서 조동화-정근우-박재상-최정에게 4연속 볼넷을 허용했다. 순식간에 스코어는 4-4 동점. LG는 뒤늦게 이대환으로 교체했지만 그마저 첫 타자 이호준에게 결승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4-6으로 패했다. '6.17 사태'로 명명된 이날 경기를 통해 임찬규는 마무리를 반납해야 했고, LG는 한동안 선발들을 마무리로 돌려 막았다. 박종훈 감독은 "투수코치가 임찬규를 바꾸자고 했는데 내가 밀고 나갔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 한화 - 8월2일 대전 롯데전 류현진 부상 재발
3-3으로 팽팽히 맞선 7회초. 한화 한대화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선발 복귀를 앞둔 에이스 류현진의 깜짝 구원등판이 바로 그것이었다. 7회 최고 145km를 던지며 잘 막은 류현진은 그러나 8회 이대호-홍성흔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주자 2명을 남겨놓은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직구 구속이 138km밖에 나오지 않으며 이상 징후를 보였다. 한화는 마무리 데니 바티스타가 급하게 올렸다. 그러나 몸이 풀리지 않은 바티스타는 연속 볼넷으로 결승점을 허용한 뒤 황재균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3-9로 졌다. 이날 경기 후 류현진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돼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왼쪽 등 견갑골 통증 재발이었고, 결국 한화의 4강 희망도 사라졌다. 한대화 감독은 "승부수를 던지고 지면 후회는 남지 않는다"고 했다.
▲ 넥센 - 9월3일 대전 한화전 끝내기 패배
넥센은 전신격이라 할 수 있는 현대 시절부터 최하위는 한 번도 하지 않은 팀이었다. 그러나 올해 창단 첫 최하위로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8월 상승세를 바탕으로 9월 탈꼴찌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한화와 3연전 첫 경기를 장성호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0-1로 지더니 이날 경기에서도 연장 11회 접전 끝에 가르시아에게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주며 3-4 패배를 당했다. 7회까지 3-1로 리드한 경기였지만 불펜진이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8명의 투수를 총동원했으나 팀 타선이 2회 이후 1안타 무득점에 그친 것이 패인이었다. 올 시즌 넥센은 팀 타율(0.245)·출루율(0.323)·장타율(0.353)·홈런(79개)·득점(512점) 등 주요 공격 부문 모두 리그 최하위 팀이었다. 3연전 마지막 경기까지 패하며 넥센의 최하위는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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