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야구결산] 삼성의 亞무대 제패와 초보 사령탑 돌풍
OSEN 손찬익 기자
발행 2011.12.30 13: 28

우승 문턱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던 아픔을 간직하며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연패로 무너진 뒤 변화를 선택했다. 첫 번째 카드는 구단 수뇌부 및 사령탑의 동반 교체였다. 선동렬 감독의 갑작스런 퇴진은 야구계의 10대 뉴스를 바꿀 만큼 충격적이었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류중일 감독이 13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1987년 삼성에 입단한 뒤 푸른 유니폼만 입었던 류 감독은 '믿음의 야구'를 추구하며 사자 군단의 무한 질주를 진두지휘했다. 삼성은 페넌트레이스부터 한국시리즈와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하며 사상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모든게 착착' 신이 내린 완벽 조화  

돌이켜 보면 이렇다할 위기도 없었다. 모든게 순조롭게 이뤄졌다. 이가 빠지면 잇몸이 공백을 확실히 메웠다. 라이언 가코의 부진과 채태인의 부상 속에 조영훈과 모상기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삼성은 조영훈과 모상기의 불방망이를 앞세워 선두 등극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시즌 도중 한국땅을 밟은 외국인 원투 펀치 덕 매티스와 저스틴 저마노는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그동안 외국인 선수와 인연이 없었던 삼성은 이들의 활약 덕분에 '용병 잔혹사'라는 꼬리표를 떼냈다. 송삼봉 삼성 단장은 우승 직후 "카도쿠라 겐이 부진하고 선발진이 무너졌을때 매티스와 저마노가 가세해 숨통이 트였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대 교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젊은 사자' 배영섭이 외야의 한 축을 담당하며 신인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붙박이 유격수로 자리매김했고 모상기, 정형식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마운드에서는 정인욱이 차세대 에이스로서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외부 보강보다 내부 육성을 고수하는 삼성은 유망주 양성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칠 계획. 송 단장은 "화수분 야구를 통해 선수들의 재능을 살리겠다. FA 선수를 영입하면 보상 선수를 내줘야 하는데 아깝다.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유망주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복귀한 삼성 타선의 무게감은 배가 될 전망. 삼성은 이승엽 영입을 통해 중심 타선 강화 뿐만 아니라 젊은 선수들이 이승엽을 본받기를 기대한다. 이른바 '이승엽 효과'는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벽 마운드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삼성 역시 탄탄한 마운드를 앞세워 5년 만에 정상 고지를 밟았다. 6인 선발 로테이션 운용은 성공적이었다. 계투진의 과부하를 덜고 선발 투수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선발 투수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면 정현욱, 권오준, 안지만, 권혁 등 필승 계투조가 마운드에 오른다. 상대 타선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다. 9회가 되면 '끝판대장' 오승환이 등판해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다.
단순히 삼성 마운드의 외부 전력만 놓고 평가한다면 오산. 투수조의 '맏형' 정현욱이 솔선수범하며 분위기를 이끈다. '정신적 지주'라는 표현이 딱이다. 성실한 훈련 태도와 철저한 자기 관리는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삼성 투수들은 "내가 내려가도 다음 투수가 확실히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과 "우리 팀의 마운드는 최강"이라는 자부심이 확고하다.
선발과 중간의 역할 분담 못지 않게 마운드 운용의 권한 일임도 컸다. 류 감독은 사령탑에 부임한 뒤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 코치에게 마운드 운용에 관한 권한을 일임했다. 오치아이 코치는 김태한 불펜 코치와 함께 삼성의 팀 평균자책점 1위(3.35) 등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치아이 코치는 "올해 류 감독님이 모든 것 맡겨 주셨다.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며 "물론 실패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의 투수 코치로 부임한 그는 "이곳에 오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여겼다. 
▲초보 감독 No! 준비된 감독 Yes!
류 감독은 초보 감독보다 준비된 감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10년간 코치로 활동하며 철저히 준비했다. 예컨데 '내가 감독이 되면 이렇게 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메모했던게 큰 자신이 됐다. 그리고 류 감독은 질책보다 칭찬을 통해 선수들을 감싸 안았다. 부진했던 선수들은 맹활약을 펼치며 스승의 믿음에 화답했다. 부임 첫해 3관왕에 오른 류 감독은 야통(야구 대통령)의 전성시대를 개척했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업적을 쌓은 김응룡 전 삼성 사장은 "초보 감독이 어딨냐. 감독은 다 똑같은 감독이지. 류 감독을 보면 초보 감독같지 않아. 내가 30년간 감독했었는데 마치 40년된 감독같아. 이제 한 시즌을 소화했는데 30년된 감독보다 더욱 차분하다"고 엄지를 세우기도 했다. 사령탑 첫해 3관왕을 달성한 류 감독에게 심리적인 부담은 없다. 그는 "괜찮다. 내년에도 우승할텐데"라고 자신감을 엿보였다.
다만 선수를 칭찬하는 방법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된다. 예를 들어 A 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이겼을때 그저 'A 선수가 잘 했다'보다 'A 선수가 정말 잘 했다' 또는 'A 선수 덕분에 이겼다'고 격려하는 부분은 박수받을 만하다.
반면 'A 선수는 내년에 주전 선수로 기용하겠다'는 발언은 시기상조에 가깝다. 전훈 캠프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마치 주전으로 낙점된 듯한 인상을 풍긴다. 무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류 감독의 의도와는 어긋난다. A 선수와 경쟁 중인 B 선수 입장에서는 기회조차 박탈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우승 전력에 확실한 해결사까지 보강한 삼성의 장기 집권 가능성은 높다. '야통' 류 감독의 돌풍이 내년에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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