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야구결산]윤석민의 진화, 오승환의 부활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1.12.31 08: 52

진화와 부활의 시간이었다.
2011시즌은 두 명의 걸출한 투수들이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KIA 에이스 윤석민(24)은 투수 4관왕에 올라 새로운 에이스로 진화에 성공했다. 삼성의 소방수 오승환(29)은 자신의 역대 최다세이브 타이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2011시즌은 두 투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2005년 고졸루키와 대졸루키로 나란히 데뷔한 두 투수는 불펜에서 프로인생을 시작했다.  모두 불펜의 필승팬에서 소방수로 보직을 바꾸었다. 윤석민은 2년간의 불펜생활을 마치고 선발투수로 전환했고 오승환은 무적의 소방수로 위치를 확고하게 지켰다.

오승환은 대학시절 팔꿈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활약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소방수로 발탁받아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를 견인했다. 2006년에는 역대 최다기록인 47세이브를 올려 국민소방수로 등극했다.  어깨근육 파열과 팔꿈치 뼈조각 수술을 받으면서 2009년과 2010년 2년 연속 4점대 방어율 투수로 부진에 빠졌다. 2010년은 4세이브에 그쳤지만 2년간은 재도약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2011시즌 오승환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유의 묵직한 돌직구는 알고도 치지 못할 정도로 힘이 되찾았다. 상대의 타이밍을 뺐는 특이한 발동작까지 더해져 난공불락의 소방수로 돌아왔다. 54경기에서 1승 47세이브, 방어율 0.63의 경이적 기록을 남겼다. 역대 최소경기(333경기) 200세이브를 수확했고 '끝판대장'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3세이브를 따내 MVP까지 수상했다. 오승환은 동료들에게는 안도감을 상대에겐 절망감을 안겨준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
윤석민의 진화도 대단했다. 스프링캠프에서 21승을 따내겠다고 호헌장담했던 그는 4월2일 삼성과의 광주 개막전에서는 3실점 패전투수로 시작했다. 4월9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도 5이닝 8실점의 부진에 빠져 시름을 안겨주는 듯 했다. 그러나 4월20일 삼성을 상대로 지각 첫 승을 따낸 이후 승승장구해 전반기에만 12승을 따내는 힘을 과시했다.
후반기들어 어깨피로로 잠시 주춤했으나 5승을 추가해 다승(17승) 방어율(2.45) 탈삼진(178개) 승률(.733) 등 4관왕에 올랐다. 트리플크라운이 포함된 4관왕은 국보투수 선동렬 KIA 감독이 91년 해태시절 작성한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데뷔 이후 최다인 178이닝을 던져 이닝이터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윤석민의 진화는 예건된 것이었다. 가장 부드럽고 유연하다는 투구폼에서 150km대의 강속구가 나왔고 140km가 넘는 고속슬라이더가 위력을 발했다. 모든 변화구를 던질 줄 아는 손가락 감각이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어깨 보호를 위해 철저하게 등판간격을 지켜준 것도 활약의 원동력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어 2년 후면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직행 1호 투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두 투수는 MVP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고투수를 놓고 격돌했는데 윤석민이 승리했다. 11월7일 정규리그 최우수 선수를 뽑은 기자단 투표에서는 윤석민은 유효표 91표가운데 62표를 얻어 오승환(19표)을 따돌리고 생애 첫 MVP 트로피에 입맞춤했다. 골든글러브에서도 189표를 얻어 오승환(113표)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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