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kg, 22개의 구멍이 뚫린 검은 연탄. 우리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소외 계층에게는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연탄이다. 안도현 시인의 에서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라는 말처럼 저소득층에게는 연탄 한 장은 단순한 연탄이 아닌 반가운 선물이다.
박용택(32, LG 트윈스)이 2011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LG 팬들과 함께 연탄을 배달하며 뜻 깊은 일로 해를 보냈다.
박용택은 3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을 찾아 꼬박 3시간이 넘도록 연탄 1500장을 날랐다. 그가 연탄 배달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LG팬들 30여명도 동참해 사랑을 실천했다.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LG 점퍼를 입은 박용택은 손수 두꺼운 목장갑을 사와서 팬들에게 나눠줬다. "연탄 배달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한 박용택은 "팬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박용택은 2년 동안 주장 완장을 차며 LG가 4강에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주장이라는 스트레스에 잔부상까지 겹치며 어려움이 컸다.
여기에 시즌 도중 LG 청문회 사건까지 생기면서 힘든 시간을 겪었던 박용택. 그러나 오늘 만큼은 팬들과 함께 '야구'가 아닌 '봉사활동'이라는 주제로 한 마음을 나눴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외투에 귀마개까지 하고 온 여성 팬들은 연탄가루를 얼굴에 묻어도 개의치 않고 쉬지 않고 나르고 또 날랐다. 힘들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LG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조동욱(28) 씨는 "이렇게나마 선수들에게 힘을 주고자 참가했어요"면서 "내년에는 LG팬들 모두가 행복한 시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 그리고 아들 친구 3명과 함께 참가한 권오현(48) 씨는 연탄을 300장 이상 던지며 가장 많은 땀을 흘렸다. "온 식구가 LG팬이에요"고 말한 그는 "특히 와이프가 박용택 선수 열렬한 팬입니다. 연탄 배달은 처음 해봤는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을 갔다 박용택의 연탄배달 발언을 듣고 얼떨결에 신청을 한 장하나(31) 씨는 어린 LG팬 동생들을 4명이나 데리고 나왔다. 장 씨는 "마음이 따뜻한 팬들과 함께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흐뭇했고 보람 있었어요. 더불어 박용택 선수의 인간미와 옆집 오빠같은 자상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늘 우리가 나른 1500개의 연탄 개수만큼이나 내년시즌에는 많은 안타와 홈런으로 팀웍과 근성의 무적 LG로 거듭났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뒤 "LG 파이팅"을 외쳤다.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본부' 김희진(26) 씨는 "보통 연예인들이 가끔 와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야구 선수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야구팀 팬이라서 그런지 연탄을 나를 때도 계속해서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네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박용택 선수와 같은 야구 선수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박용택 역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돌려드릴지 고민했어요. 연탄배달은 올해 처음 시작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내년에는 여러분들도 같이 연탄 기부해서 더 많이 나르도록 해요"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박용택은 마지막으로 이날 행사에 참가한 LG팬들에게 자신의 사인볼과 팬들이 원하는 다른 LG 선수 사인볼 전달을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agassi@osen.co.kr
개포동 구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