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취재석] 방송사들이 가수들에게 주던 상을 없앤 데 이어 방송인들에게는 상을 '퍼주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방송 권력의 몰락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상 안 주면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는 가요관계자와 공정성에 집요하게 시비거는 팬덤의 등쌀에 양 손을 들었던 방송사들이 이제 방송인들에게도 상을 고루 나눠주면서 스타 권력에 무릎을 꿇는 모양새다.
상을 고루 나눠준다는 것은, 최대한 많은 스타들에게 상을 안겨주고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가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 단 한명의 승자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을 외면하고서라도, 스타와의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다는 절박한 계산이 깔려있는 셈이다.

올해는 KBS와 MBC가 연예대상 수상자조차 단 한명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연예인들의 눈치를 더 복잡하게 봐야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재석-강호동의 양강구도가 무너진 데다 두 사람을 제외하곤 아직 '대상감'이 없다는 것도 상 퍼주기의 이유는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대상으로 누구 한 명을 선택하기엔 방송사의 간이 '너무 작았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풀이다.
지난해 12월31일까지 이어진 지상파 3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이어졌다. 마구잡이로 시상 부문들을 늘린 탓에 웬만한 출연자들은 '트로피 하나 못챙기면 바보' 눈치를 봐야됐고, 신인 우수 인기상 수상자가 떼거리로 호명되는 촌극을 연출했다.
톱스타에게 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시상식에 나타나달라고 하는 것은 현재 방송 권력으로는 어려운 상태. 스타가 방송사에 잘 보여야 했을 때에는 수상 여부와 관계 없이 방송사가 부르면 바로 달려가야 했지만, 이제는 스타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나갈까 말까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시청률과 체면을 위해서라도 톱스타를 섭외해야 하는 방송사로선 상을 나눠주고 그나마의 자존심이라도 챙기는 수밖에 없다.
태생적 한계도 있다. 앞으로도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함께 일해야 할 방송사가 직접 연예인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상을 준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상을 두고 경합을 벌이다 상을 못받고 돌아간 탤런트나 예능인이 다음해 해당 방송국을 떠나거나, 관련 섭외에 응하지 않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연예인이 그러든 말든 콧방귀도 뀌지 않던 방송사가 이젠 많이 아쉬워졌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에서는 '시상식'이 아닌 '잔치'로 봐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상태. 지난 29일 MBC '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박미선도 "상이 많으니, 지루하긴 하지만 훈훈하게 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냉담하다. 'MBC 회식을 왜 생중계 하느냐', '상을 MBC 출입증처럼 발급한다' 등 악평이 쏟아지고 있다.
가요계는 이미 방송권력에 승리를 거뒀다. 늘 보이콧과 온갖 잡음으로 시끄러웠던 가요시상식은 방송사가 '감히' 가수들에게 상을 주지 않고, 모든 가수들을 고루 출연시키자 좀 잠잠해졌다. 지난 29일 SBS '가요대전'에는 무려 34팀이 출연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론, 시청률은 수년째 그저 그렇다. 국내 연말시상식에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가수도 없다.
방송 권력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좋다', '나쁘다'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다. 방송사가 연예인들을 틀어쥐어도, 연예인들이 방송사를 들었다 놨다 해도 부작용은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 어쨌든 확실한 건 연예인들을 평가하고 상을 주기엔, 방송 권력이 많이 무너져버렸다는 것. 연예인과 밀고 당기며 협상을 해야 할 방송사에게 공정한 시상식을 기대하고, 매번 실망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리 현명한 대처는 아니다.
연예계에서는 각 방송사마다 똑같은 시상식을 의무적으로 치러낼 바에는 방송사를 통합해 권위있는 시상식을 하나 마련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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