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가?" (후지카와)
"백네트에 공 던진 선수로 기억하지(웃음)."(이승엽)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야구 영웅이 만났다. 이승엽(36, 삼성 라이온즈)과 후지카와 규지(32, 한신 타이거스)는 지난해 12월 7일 일본 간사이 TV 주최로 잠실구장에서 대담을 가졌다. 당시 1시간 정도 진행된 대담은 비공개로 열려 국내 언론에는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일본 현지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탔다.

이승엽과 후지카와는 잠실구장 포수 백네트 바로 뒷편 본부석 통로에 앉아 대담을 진행했다. 일본에서는 라이벌 팀 타자와 투수로 맞상대 했던 두 선수지만 반년 만에 재회한 두 선수는 서로 농담을 건네는 가운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담은 후지카와가 질문을 던지고 이승엽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선수가 만나 악수를 나누는 도중 우연히 LG 트윈스 이진영(32)이 그라운드에서 러닝하는 것을 발견한 후지카와는 "베이징에서 상대했던 타자 아닌가. 다시 한 번 붙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에서 이진영은 1-2로 뒤진 7회말 2사 1,2루에서 후지카와를 상대로 동점 우전 적시타를 기록하며 역전극의 발판을 다졌었다.
후지카와는 이승엽에게 "일본을 떠날 때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해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면서 "(특히) 2007년 9월 타임 판정 때 화를 낸 것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07년 9월 9일 요미우리 이승엽과 한신 후지카와가 8-8로 맞선 연장 12회 도쿄돔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후지카와의 투구 준비동작이 길어지자 이승엽은 타임을 요청했고 심판은 이를 받아들였다. 순간 투구동작에 들어간 후지카와는 타임이 선언되자 포수 오른쪽 백네트에 신경질적으로 공을 집어 던졌다. 이승엽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후 승짱(이승엽의 애칭)에게 사과했다"고 말한 후지카와는 "사실 심판에게 화가 났던 상황이다. 이승엽의 타임 요청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투구동작이 들어갔는데 타임이 선언되면 부상을 당할 수 있다. 그래서 화가 났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지카와는 이승엽에 "당시 내 행동을 한국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에 이승엽은 "난 괜찮은데 지금 한국에서는 (후지카와가) 백네트에 공 던진 선수로 기억된다"고 농담을 던졌고 후지카와 역시 "한국에서 걸어 다니면 안 되겠다. 트위터로 한국 팬들에게 진상을 알려 달라"고 농담으로 받았다.
또한 후지카와는 이승엽에 단기전 맹활약의 비결을 물었다. 이에 이승엽은 "한국 사람은 단기전에서 절대 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설령 부상으로 내일부터 야구를 못 해도 말이다. 팀 전원이 그런 생각으로 임한다"고 답했고 후지카와는 "이제 팀의 주장을 맡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승엽이 한신에 조언을 해 줬다"고 감사했다.
끝으로 내년 FA 자격을 얻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앞둔 후지카와가 이승엽에 조언을 구했다. 이승엽은 "8년 동안 일본에서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선택했고 큰 무대에서 뛴 것은 즐거웠다"면서 "도전에 후회는 없다"고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한편 후지카와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소방수로서 제프 윌리엄스, 구보타 도모유키와 함께 한신의 특급 계투조를 이끌었다. 지난 시즌 성적은 56경기 등판 3승3패 41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1.24을 기록했다. 2007년 46세이브로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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