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그는 고교 최대어 투수 중 한 명으로 주목받으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부상과 수술, 제구난이 겹치며 방출 위기까지 몰려 세간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입단 후 9년차 시즌 비로소 1군에서 가능성을 비춘 우완 노경은(28. 두산 베어스)이 10년차가 되는 2012시즌 각오를 불태웠다.
성남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3년 1차 우선지명(계약금 3억8000만원)으로 두산에 입단했던 노경은은 2010년까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묵직한 구위를 인정받아 선발 후보로는 이름을 올렸으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 제구난으로 인해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노경은은 지난해 44경기 5승 2패 3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5.17로 투수진에서 분전한 계투 요원 중 한 명이었다. 승리 계투로만 등판한 것이 아니라 계투 추격조, 롱릴리프 등으로 종횡무진하며 연투가 잦아 기록 이상의 공헌도가 훨씬 컸다.

거액의 계약금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오랫동안 유망주 틀을 깨지 못했던 노경은은 10년차 시즌 비로소 5000만원대(5500만원) 연봉에 진입했다. 시즌 막판 팔꿈치 부상으로 일찍 시즌 아웃되었음에도 전년도 대비 90%(2011년 2900만원) 인상률로 현재 팀 내 최고 연봉 인상률이다.
김진욱 신임감독은 노경은이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지도자였다. 2군 투수코치로 재직하며 김 감독은 노경은에 대해 “좋은 재능과 몸을 지니고 있다. 특히 손목힘이 대단한 선수인데 이를 너무 힘 있게 돌리다보니 공이 엇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제구난이라기보다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라며 다독이고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미래의 두산으로 봐도 노경은은 기대가 큰 선수다. “1~2년 간은 외국인 투수로 마무리 보직을 채우겠다. 젊은 국내 선발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라고 밝힌 김 감독이 미래의 마무리로 생각하는 투수는 바로 노경은. 150km 이상의 직구는 물론 최고 144km까지 계측된 슬라이더가 일품이다. 슬라이더 구속만 따지면 국내 최고급인데다 드롭커브의 움직임도 수준급이고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제구력 또한 한결 나아졌다.
“마무리로서 자질은 충분한 선수다. 그러나 아직 절체절명의 순간을 온전히 맡기기는 무리다. 마인드컨트롤 면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비시즌과 스프링캠프 동안 선수 본인이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외국인 투수를 마무리로 활용하는 1~2년 간 노경은에게 필승 계투-셋업맨으로 기회를 주며 경험을 쌓게 하고 싶다”.
연봉 계약 후 “앞으로 무난하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웃은 노경은은 “앞으로 프로 선수로서 가져야 할 긴장감은 잊지 않고 1군 무대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어렵게 잡은 1군에서의 기회를 또다시 허무하게 날려버리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2년 전만해도 더딘 성장세와 팬들의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야구 포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노경은. 지난해 초 선배 이재우는 그에게 “상대 타자들에게 내 공이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몇 시즌 동안은 순탄하게 야구 인생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덕담을 건넸고 노경은은 제 구위에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프로야구 선수 노경은의 야구 인생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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