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대통령 선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변화를 갈망하던 LG 트윈스가 이색적인 주장 선거 방식을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그리고 프런트까지 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2012시즌 주장으로 '적토마' 이병규(38)를 선출했다.
LG는 5일 오전 10시부터 잠실야구장 내 식당에서 열린 주장 투표에서 기호 1번 이병규와 기호 2번 이진영이 치열한 박빙을 벌였다. 결과는 이병규가 이진영의 예상 밖 선전을 뿌리치고 주장 완장을 차게 됐다.

일단 선거 방식이 매우 파격적이다. 새롭게 취임한 김기태(43) 감독은 선수단과 프런트 모두가 투표를 하는 참여선거를 통해 주장을 선출할 것을 제안했고, 선수들과 구단 모두 받아들여 성사됐다.
선거는 오전 9시부터 선수단, 코칭 스태프, 프런트까지 총망라한 145명이 참가해 1인 1표 방식으로 치러졌다. 총 유권자는 145명이었으나 유효표는 142표였으며, 이 가운데 과반수인 72표를 먼저 획득하는 쪽이 주장으로 당선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개표가 이뤄지기 전 선수단은 이병규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투표를 하고 나온 LG 관계자는 "모든 사람들이 '이병규, 이병규' 그래서 혹시나 이진영이 '0표'를 받을 것 같아 난 이진영을 찍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진영도 주장에 대한 뜻이 없다고 수 차례 강조한 만큼 이병규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래서 동정표도 나왔다.
그러나 이진영의 인기는 LG 선수단 모두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개표를 시작하자 "이진영"의 이름이 불린 것을 시작으로 처음 2표는 이진영의 몫이었다. 그러면서 이진영과 이병규는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거듭했다.
개표 22표까지 11대 11로 박빙을 유지하자 사회를 보던 관계자도 "오전 10시 30분 현재 박빙입니다"라고 말해 두 선수의 긴장을 풀어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병규가 표를 받으면 아무 말이 없었으나 이진영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선수단은 "오, 오"라고 탄성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모두가 웃었다.
한 쪽에서는 "이진영이 돈봉투를 뿌렸다는 소문이 있다"는 농담을 하며 박빙으로 진행된 개표에 선 퓨도 즐거워했다.
그러나 23표째부터 이병규의 이름이 나온 뒤 이병규의 몰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30대 18로 벌어졌다. 그러자 이진영도 이병규를 바라보며 "(병규)형, 생각보다 많이 나왔어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이진영은 개표 후반에 또 다시 몰표를 받으며 한 때 40표 이후 4표까지 격차를 좁혔으나 계속해서 이병규의 이름이 불리며 주장 투표 결과는 기울고 말았다.

아쉽게 주장이 되지 못한 이진영도 "(이)병규형이 주장이 되어서 축하한다. 2012시즌에는 곁에서 힘을 모아 LG가 좋은 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어 주장이 된 이병규는 "아침 일찍부터 투표에 참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진영이가 생각보다 많은 표를 받았다"고 말해 선수단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병규는 "LG 트윈스를 놓고 모래알, 모래알 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단단한 바위로 만들겠다"라고 말하며 선수단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병규는 지난 2004년 이순철 감독 시절 주장을 맡은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이병규는 투표가 아닌 이순철 감독의 지명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기에 많이 당황했다.
이병규는 "그때(2004년)는 이순철 감독님이 지명해서 된 거라 창피했다. 형들도 너무 많아서 힘이 없었다. 이번에는 선수들의 투표로 된 거기 때문에 선수들의 믿음이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진영이도 중간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진영이 동기 등 중간 선수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사실상 이진영을 부주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진영은 부주장격이다. 어린 선수들과도 소통 잘해서 그 친구들의 어려운 부분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뒤 "무엇보다 모래알 모래알 하시는데 선수단 잡음을 없애고 야구에만 전념하게끔 해서 단단한 팀을 만들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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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민경훈 기자 rumi@0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