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를 데려왔다. 게다가 그를 데려오면서 킬러가 한 명 사라졌다. SK 와이번스가 검증된 도미니카 출신 우완 아킬리노 로페즈(37)를 영입한 이유다.
SK는 지난 5일 KIA에서 지난 3시즌 동안 29승을 올린 로페즈를 새 외국인 투수로 영입했다. 2명의 좌완을 찾는 KIA가 로페즈를 임의탈퇴로 묶는 대신 타 구단에서라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자유계약으로 풀어줬고 SK가 잽싸게 로페즈에게 비룡 유니폼을 입혔다.
2009시즌 14승(공동 다승왕)을 올리며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동시에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던 로페즈는 3년 통산 29승 24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82경기에 나서 510이닝을 기록한 로페즈는 지난 3년 간 8개 구단 전체 선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정대현과 이승호(이상 롯데)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어 이적한 데다 고효준이 공익근무, 전병두가 어깨 인대 재건 수술을 받으며 계투진이 약화된 SK다. 사이드암 임경완(전 롯데)이 FA로 영입되었고 좌완 박희수가 지난해 후반기 괄목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주축 계투로 자리 잡았으나 누수가 큰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구단 관계자는 “6이닝은 기본으로 7,8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던 로페즈다. 그만큼 선발로 나섰을 때 계투 부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비췄다. 후반기 팔꿈치 부상이 문제시되었으나 윈터리그에서 무리 없는 피칭을 선보인 만큼 1차적으로 SK가 검증된 이닝이터를 찾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SK는 로페즈를 선택함으로써 부수적인, 그러나 굉장히 큰 이점을 얻었다. 지난 3년 간 로페즈는 KIA 소속으로 SK 상대 전적 3승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13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혼자 2승을 따내며 SK의 한국시리즈 3연패를 저지했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팔꿈치 부상 후유증이 우려되었던 2011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로페즈는 6이닝 2실점으로 분전하며 선발 투수로 몫을 다했다. 2009년 페넌트레이스서 SK 상대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27을 기록했던 로페즈는 2010년 2패 평균자책점 4.19로 흔들리기는 했으나 단 한 경기(2010년 6월 19일 문학 SK전 5⅓이닝 6피안타 9실점)를 제외하고는 모두 7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구단에서도 천적제거를 위해 로페즈를 영입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로페즈가 결정적인 순간 SK의 발목을 잡는 호투를 펼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로페즈를 영입한 데는 ‘비룡 킬러’를 한 명 없애는 데도 이유가 있다”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검증이 된 실력파 베테랑을 영입하는 데다 천적이 한 명 없어지는 만큼 기록에 기초했을 때 SK의 선택은 탁월하다.
그러나 변수는 엄연히 존재한다. 3년 간 510이닝을 소화하며 최다 이닝 투수가 되었다는 점은 그만큼 어깨와 팔꿈치를 많이 사용했다는 뜻이다. 더욱이 로페즈는 싱킹 패스트볼도 140km대 중반에 이르던, 우리 나이 서른 여덟의 베테랑 투수다. 좋은 구위를 갖춘 투수가 나이가 들며 갑작스레 구위 저하로 고전했던 케이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얼마든지 있던 만큼 선수단 최종 합류와 함께 로페즈의 몸 상태를 면밀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또한 KIA는 자신들이 보유했던 로페즈의 투구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투수리드에 있어 자타공인 국내 최고임을 자랑하는 박경완을 비롯, 조인성-정상호를 보유하며 포수진에서 걱정이 없는 SK지만 로페즈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는 동시에 원활한 의견 공유를 통해 상대 허를 찌를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검증된 투수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로페즈 재활용 효과를 누리기 힘들다.
성공하면 선수의 의욕을 더욱 높여줄 수 있을 뿐더러 패 수를 줄이고 계투진 과부하를 막는 에이스 카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투수진의 전체적인 난국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로페즈의 SK 이적은 여러 가능성을 지닌 책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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