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댄싱퀸'(19일 개봉, 이석훈 감독)의 황정민은 순진하지만 바보같지 않고, 착하지만 마음 속 열정을 숨기지 않는다. 친근하고 소박한데 은근 능력자다.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이 판치는 세상, 이 남자 완전 '호감형'이다.
주인공이 착하다는 것과 밍숭맹숭하다는 것은 별개다. 작품에서 감독이 까칠한 캐릭터를 그려도 관객들이 최대한 미워하지 않게 하려고 애써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댄싱퀸' 속 황정민은 그 반대다. 영화 속 황정민은 입체적인 변화 속에 현실과 이상의 팽팽한 조화를 이뤄낸다.
극중 황정민은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의의 사도는 아니다. 지하철 사고를 당할 뻔한 시민을 구하는 것도 '뒤에서 누가 밀어서' 우연하게 이뤄졌고, 전세값을 올려줘야하는 형편에서 장인에게 기대는 뻔뻔한 모습도 보인다. 변호사이지만 한 번에 붙은 천재형은 아니다. 7전 8기 끝에 붙은 오뚝이 근성을 지녔고, 변호사이지만 돈도 잘 못 벌어 아내 엄정화의 구박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황정민의 특유의 밝은 에너지에서 측은지심이 아닌 긍정적인 희망을 본다.

순진한 황정민은 그의 캐릭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서울 특별시'도 사투리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그가 서울시장 후보로 TV 토론회에서 닳고 닳은 정치인들과 한판 배틀을 벌인다.
어쩌면 너무 순진하고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당연히 무조건 호감형 황정민 편이다. 복지를 운운하면서 분유값도 모르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분유값을 꾀고 있으면서 시민들의 진짜 복지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지지를 얻는 그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잘 하고 싶은데 잘 안되고, 멋지고 싶은데 굴욕 당하고, 진심이 있는데 그게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한번씩은 좌절했던 관객들의 마음을 흔드는 가장 큰 이유다.
한결 밝아진 배우 황정민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신선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부당거래', '모비딕' 등 그간 검객, 형사, 기자 등 일상 현실에서 조금은 먼 인물들을 연기하며 사회를 대변했던 황정민은 '어쩌면 옆집에 있을 수도 있는 운이 좋은 웃긴 아저씨'로 분해 관객들과의 거리의 폭을 좁힌다. 굳이 따지자면 이번 영화는 '너는 내 운명',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의 계보로 황정민의 필모그래피의 큰 두 축 중 다른 한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천의 얼굴'이라 불리는 황정민의 진가가 다시한 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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