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D 새둥지' 나경민,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1.10 16: 40

"모든 선수들의 꿈이잖아요. 물론 힘들지만 어렸을 적 꿈을 이뤘기에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2012년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프로야구(MLB)에서 한국인 선수 트레이드 소식이 날아왔다. 미국 'CBS스포츠'는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컵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컵스는 나경민을 포함해 앤드루 캐시너를 샌디에이고로 보내고 앤서니 리조와 젝 케이츠를 받아 들였다.
지난해 9월 중순 시즌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온 나경민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내년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트레이드가 결정된 뒤 나경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정말 아쉽다"며 입을 열었다.

작년 나경민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서 4개 팀(루키, 로우 싱글A, 하이 싱글A, 더블A)을 거치며 83경기서 2할6푼8리의 타율에 72안타 22타점 41득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재작년 미국 진출 첫 해 마이너리그 로우 싱글A 66경기 출전, 타율 2할8리 37안타 11타점 6도루에 그치며 부진했다가 끌어올린 성적이었기에 아쉬움은 컸다.
"2010년엔 '왜 미국에 왔나' 싶을 정도로 야구가 힘들었다. 자신감도 많이 잃었다. 하지만 2011년에는 성적도 나왔고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찾았었다"고 말한 나경민은 "내년에는 야구가 더 자신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다. 내년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더욱 아쉽다"고 이적의 소감을 전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필요한 팀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도 된다. 더욱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 어머니의 '새로고침', 부모님의 헌신
나경민의 트레이드가 미국 현지에서 결정된 순간, 한국은 동이 틀 준비를 하던 깊은 새벽이었다. 시카고 컵스 구단 관계자가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나경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한참 단잠에 빠져 있었기에 받을 수 없었다. 그는 "트레이드 소식을 아버지께 들었다. 사실 전화가 왔지만 자다가 못 받았다"고 말했다.
야구를 하는 거의 모든 선수가 그렇겠지만, 나경민 역시 부모님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나경민은 "부모님 두 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면서 "아버지께선 나를 위해 직장이 끝난 뒤 에이전트 공부를 따로 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들의 뉴스가 나왔나 인터넷을 켜 놓고 '새로고침' 버튼을 계속 누르고 계실 것"이라며 웃었다.
가끔 충돌도 있다. 나경민은 "이번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 번 반항한 적이 있다. 흔들리지 않도록 계속 열심히 하라고 말씀 해 주시는 건데 비시즌 때는 야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루는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를 듣고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만 있던 적이 있었다"면서 "물론 지금은 다 풀었다"고 설명했다.
▲ "어렸을 적 꿈 이뤘기에 행복한 사람이다"
2009년 실시된 신인선수 드래프트 때부터 1차 지명이 폐지되고 전면 드래프트가 본격 도입됐다. 1차 지명때와는 달리 구단에서 지명이 예상되는 유망주를 집중 관리할 수 없었기에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노크했다. 야수 최대어로 꼽히며 1순위 지명이 유력시되던 나경민 역시 청운의 꿈을 안고 시카고 컵스와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만 72만 5천 달러로 그 해 최고 액수였다.
처음에는 나경민에게 메이저리그가 1차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프로 지명을 앞두고 1차 지명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저리는 사실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시카고 컵스에서 제의가 들어오며 고민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당시 나경민은 국내 프로야구 진출과 메이저리그, 그리고 대학교 진학(연세대학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나경민은 "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선택을 앞두고 정말 많이 고민을 했다"면서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라고까지 표현을 했다. 꿈에 그리던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맺으면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하기에 더욱 고민이 깊었다.
깊은 고민 끝에 나경민이 선택한 길은 메이저리그다. 그는 "인생에 한 번뿐이라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꿈꿔오던 게 바로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서 뛰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사실 처음 미국으로 건너가 후회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적응도 됐다. 어렸을 적 꿈을 이뤘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컵스랑 계약하니까 바로 국가대표에서 빼더라"며 웃었다.
▲ 나경민의 목표, 이용규를 넘어 이치로까지
나경민의 체격은 177cm의 키에 몸무게 82kg이다. 야구선수 치고 큰 체구는 아니다. 그에게 야구선수로서 목표가 될 선수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국에서는 이용규 선배님, 미국에서는 이치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경민은 "사실 추신수 선배님의 자기관리 등 모든 면을 본 받고 싶다. 하지만 나와는 야구 스타일이 다르다"면서 "사실 야구하는 모습만 봤을 때는 이치로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고교시절 나경민은 넓은 수비범위와 빠른 발, 정확한 타격, 그리고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외야수였지만 장타력을 장기로 삼지는 않았었다.
그는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수비와 어깨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면서 "가서 해보니 수비는 할 만하다. 그런데 송구는 처음에 힘들더라. 공인구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한국 공은 잡았을 때 손에 달라붙는 느낌인데 미국 공은 쉽게 미끄러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엉뚱한 곳에 송구를 하곤 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적응을 해야 할 문제"라며 웃었다.
이제 그는 새 둥지 샌디에이고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아직은 마이너리그서 경험을 좀 더 쌓아야 한다. 경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좁은 비행기에 몸을 구겨넣어야 하고 끊임없이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앞선 메이저리거 추신수 역시 똑같이 겪었다. 나경민의 '코리안 드림'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cleanupp@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