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끝나고 방송과 언론으로부터 단연 주목을 받은 선수는 유격수부문 수상자인 이대수(한화)였다. 2002년 SK에 입단한 이후 두산을 거쳐 지금의 한화로 오기까지, 이대수의 그간 성적은 사실 골든글러브는 고사하고 주전자리를 꿰차는 일도 버거워 보일 만큼의 그저 그런 성적이었다.
소속 팀의 주전유격수로서 규정타석을 넘겼던 적은 2011년을 제외하면 2006년(SK)과 2010년(한화) 딱 두 번. 그나마 기록도 형편없었다. 2006년에는 2할5푼3리의 타율(33위)을, 2010년에는 2할3푼2리로 규정타석을 채운 8개 구단 타자 45명 가운데 가장 아랫줄에 자리하며 일명 ‘멘도사 라인’ 하한선에 이름을 새겼을 만큼 그의 타격성적 그래프는 물밑을 줄곧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의 이대수는 완전 달라져있었다. 개인 역대 최고치인 8홈런 50타점에 생애 첫 3할 타율을 기록, 이전부터 인정받아왔던 수비뿐만 아니라 타격에서도 완전히 다른 선수로 변신하는데 성공하며 꿈만 같던 골든글러브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인생의 대 반전을 완성해냈다.

강정호(넥센), 김상수(삼성), 김선빈(KIA)과의 대 혼전이 예상되던 최대 격전지에서 이대수는 불과 10여 표의 근소한 표차로 이들을 눌렀고, 무대에 올라온 이대수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 손시헌은 2009년 골든글러브 유격수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자리에서 “한번도 주인공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 무척 기쁘다”라고 했었다.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이대수 역시 2011년 연말 시상식을 통해 “자신을 본보기로 음지에 있는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열심히 운동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연습생이나 훈련생신분으로 골든글러브 자리에까지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게만 보이는 꿈을 이뤄낸 손시헌이나 이대수와 같은 선수들의 인간승리를 현실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미래가 불투명한 대다수의 선수들에게는 그 자체가 희망이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22일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차 드래프트가 열렸다. 이 지명제도는 메이저리그에서 시행되고 있는 룰5 드래프트 제도에서 그 모태를 찾을 수 있다. 룰5 드래프트는 1950년 메이저리그 윈터 미팅에서 처음 시행된 선수 선발제도이다. 마이너리그의 유망주들이 특정 팀에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선수층이 두터워 좀처럼 메이저 무대 진출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만년 후보선수들에게 길을 열어 주자는 취지의 방생(?) 행사로, 마이너리그에서 3년 이상 뛴 선수들 중 40명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타 구단들이 돌아가며 선수를 지명, 뽑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내용이나 시행취지가 비슷한 2차 드래프트는 한국형 룰5로 NC 다이노스의 창단과 이에 따른 선수수급이라는 시급한 상황에서 비롯된 제도이지만,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길이 열린 젊은 유망주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당장은 소속되었던 팀 내 보호선수 명단(40명)에 들지 못한 선수들이 얼마나 더 기량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에 아직은 물음표가 따라 붙지만, 메이저리그 룰5를 통해 이적 성공신화를 아로새긴 몇몇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앞날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임을 알 수 있다.
1954년 로베르토 클레멘테(브루클린 다저스)는 룰5 드래프트를 통해 피츠버그로 이적한 이후, 1966년 내셔널리그 MVP, 1971년 월드시리즈 MVP 등을 수상했고, 수위타자를 무려 4번이나 차지하는 성공신화를 쓰며 후학들 가슴에 희망을 안겨준 바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 1980년의 조지 벨(필라델피아)과 1983년의 켈리 그루버(클리블랜드)를 떠올릴 수 있다. 조지 벨은 룰5를 통해 토론토로 이적한 7년 후인 1987년 타율 3할8리, 47홈런, 134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MVP에 올랐고, 켈리 그루버 역시 7년이 지난 1990년 토론토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또한 1999년 휴스턴에서 플로리다로 둥지를 옮겨야 했던 요한 산타나는 2004년과 2006년 미네소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사이영상을 2번이나 거푸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활발히 일어난 이대호(롯데→오릭스), 조인성(LG→SK), 정대현(SK→롯데), 이택근(LG→넥센) 등 간판 선수들의 이동과 박찬호(오릭스→한화), 이승엽(오릭스→삼성), 김태균(지바 롯데→한화) 등, 선 굵은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복귀로 세상의 온 관심이 그들에게 쏠려 있지만, 2011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 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몇몇 기대주들의 향후 동향에도 관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2차 드래프트 시행 전, 얼마나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시장에 나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드래프트 행사장에서 거명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머지 않은 미래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제법 많다.
우선 전체 지명 1순위로 호명된 조평호(26. 넥센→NC)를 들 수 있다. 2006년 현대에 입단했던 데뷔 6년차 조평호의 그간 1군 성적은 31타수 1안타. 그러나 2011년 퓨처스리그에서는 15경기에 출장, 3할9푼7리의 타율에 3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타자다. 2007년 퓨처스리그 홈런레이스에서 1위에도 올랐을 만큼 장타력을 겸비한 선수로 경험을 쌓는다면 팀의 주포로 성장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선수라 하겠다.
또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아왔던 오정복(25. 삼성→NC)의 행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데뷔 2년째이던 2010년 삼성에서 100경기에 출장, 7홈런에 2할7푼대의 타율을 올렸을 만큼 잠재력을 보유한 선수다.
이 밖에도 포스트 김동주로 불리던 두산의 이두환(23. 두산→KIA), 한화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김강(23),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오장훈(27) 등 투타에 걸쳐 성장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이는 선수들이 다수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나무에 둥지를 옮겨 틀었다.
지금은 30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타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대호(오릭스)도 데뷔 초기이던 2000년대 초반 몇 년간은 그저 덩치 큰 타자 정도로 인식되던 무명 선수였음을 생각하면, 훗날 누가 어떤 계기를 발판 삼아 소속팀, 더 나아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선수로 성장해 있을 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2011년 12월11일,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은 이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