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게임' 주심, "동렬이 공 무서워 피했다"
OSEN 고유라 기자
발행 2012.01.11 09: 35

"생각해보니 (최)동원이와 (선)동렬이 맞대결 3번 다 주심이 나였네".
김광철 한국심판학교장은 한국 야구 심판의 역사와도 같은 인물이다.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와의 프로야구 첫 경기의 주심이 바로 김 교장이다. 그의 "플레이 볼!"로 한국 프로야구는 첫 문을 열었다. 김 교장은 1973년부터 실업야구 심판 생활을 시작해 1982~1989년 KBO 심판을 거쳐 1989시즌 후부터 7년 동안 심판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얼마전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1987년 5월 16일 사직 롯데-해태(현 KIA)전의 주심도 그였다.

김 교장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오랜 시간 심판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경기를 봐왔다. 지금은 오래 돼서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기가 그때 동원이와 동렬이의 15회 맞대결"이라고 말했다. 4시간 56분이라는 긴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강렬한 경기였다.
그가 그 경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김 교장은 "그때 연장전에 들어가면서 해태에 남은 포수가 없어 내야수였던 백인호가 포수를 봤다. 그런데 연장전에 들어가서도 동렬이 공이 계속 145km를 넘었다. 백인호가 무서우니까 한껏 웅크리고 공을 받더라. 포수가 그러고 있으니 그 뒤에 나한테 올까봐 나도 무서워서 공 날아올 때마다 피해다닌 기억만 난다"고 웃었다.
김 교장에 의하면 故 최동원과 선동렬의 그때 공은 1회부터 15회까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빠르고 좋았다. 김 교장은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면 동원이 몸이 굉장히 안좋다더라. 하지만 그때는 둘다 대단할 때였다. 아프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아마 영화가 재미있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 같다. 선수들 벤치 클리어링이나 싸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동원에 대한 김 교장의 안타까움도 이어졌다. 그는 "동원이가 잘 안풀려서 많이 속상하다. 동원이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지 못한 것은 그의 투구폼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최윤식씨)가 가르치신 대로 던져서 그 폼이 굳어진 것이다. 그건 최동원 밖에 할 수 없는 폼인데 그걸 가르친다고 되겠나"라며 순탄치 않았던 최동원의 은퇴 후 삶에 대해 탄식했다.
김 교장은 심판위원장을 그만둔 후 지난 2010년 심판학교를 설립해 지난해 겨울 3번째 기수를 맞았다. KBO와 대한야구협회(KBA),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이하 국생체)와 명지전문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심판학교를 졸업하는 수강자들은 국생체 산하 리그에서 심판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이중 10명은 연습 경기 후 KBA 심판으로 보내진다. 이들중 또 경력이 1년 이상인 심판은 KBO 2군에 진출할 자격이 주어진다.
김 교장은 "예전에는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심판이 바로 서야 야구가 바로 선다. 지금은 한국 야구의 황금기다. 야구 심판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계속해서 양질의 심판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몇 년 후가 되면 우리 학교를 졸업한 심판들이 한국 야구를 이끌고 나갈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국 야구 심판의 미래는 전설의 가르침 속에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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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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