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승준은 에릭 산드린이던 때와 비슷하다. 대표팀 이승준은 열심히 수비했으나 지금은 20점을 넣고도 30점을 내주더라”.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에게 지난 10일 서울 삼성전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삼성의 홈 경기 14연패 사슬을 끊어준 경기. 그것도 경기 전 수비에 대해 비판했던 이승준(34. 서울 삼성)에게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모비스는 이날 경기 막판 추격전을 펼쳤으나 81-88로 패하고 말았다. 시즌 전적 16승 20패(6위, 10일 현재)를 기록 중인 모비스는 이날 패배로 공동 7위 창원 LG와 서울 SK에 두 경기 차 추격을 허용했다.

경기 전 유 감독은 올 시즌 후 혼혈선수 1기(KCC 전태풍, 삼성 이승준, LG 문태영)들이 원 소속팀을 제외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야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모비스는 동부, SK, 오리온스와 함께 3년 전 혼혈선수 드래프트서 지명권을 행사하지 못한 4개 구단 중 하나로 세 선수 영입에 대한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
“다음 시즌 리빌딩을 위해 분위기를 바꿔야 할 시점이다. 전태풍을 영입하면 양동근과 함께 2가드 시스템을 펼칠 수 있고 문태영은 공격 옵션이 많은 선수라 매력적이다. 이승준은 신장의 우위를 갖추고 있고 블록슛 능력도 좋다. 이렇게 이야기하고도 꽝을 뽑는 25%에 걸리면 어쩌나 몰라”(웃음).
특히 유 감독에게 이승준은 에릭 산드린이라는 이름으로도 기억된다. 귀화 전인 2007~2008시즌 이승준은 케빈 오웬스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모비스 유니폼을 입었으나 한국무대 데뷔전을 앞둔 2007년 11월 24일 KT&G전 시작 30분 전에야 발목에 철심이 박혀있어 출장이 어렵다고 실토, KBL 재정위원회에 제소될 뻔했다. 산드린이 제대로 된 골밑 지킴이로 활약하지 못하던 그 해 모비스는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경쟁 구도에서 탈락했다.
산드린 시절이 안 좋은 기억이었다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좋은 기억이다.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유 감독은 골밑과 외곽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이승준을 내세웠고 이승준은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은메달에 기여했다. 개최국 중국과도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칠 수 있던 데는 슈터 조성민(KT)과 이승준의 활약이 컸고 유 감독 또한 이승준에게 높은 점수를 준 바 있다.
유 감독에게 이승준에 관련해 묻자 답변은 “지금 이승준은 산드린일 때와 똑같다”라며 비판했다. 신장과 운동능력, 외곽슛은 좋지만 수비력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표팀 시절 이승준은 수비를 열심히 해줘 고마운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20득점을 해도 상대에게 30점을 내주는 선수다. 만약 우리 팀에 온다면 공격보다는 블록슛 등 수비에서 큰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다”. 올 시즌 이승준은 5년 전 모비스 시절 골밑 블루워커 노릇을 해주지 못하고 겉돌던 산드린의 모습이라는 유 감독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날 이승준은 맹렬한 공격으로 모비스 진영을 휘저었다. 26득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야투율은 무려 76.9%(13개 시도/10개 성공)에 달했다. 여기에 3개의 블록슛까지 더하며 수비 면에서도 공헌했다. 삼성의 뒤늦은 시즌 첫 홈 경기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힐 만한 이승준의 11일 활약이다. 경기 후 유 감독은 "전투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라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뒤이은 이승준의 인터뷰. 이승준은 ‘만약 혼혈 선수 이적 규정에 따라 모비스에 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유 감독에 대해 “훌륭하신 분이다”라며 답을 이어갔다.
“유재학 감독님과 대표팀 생활을 했던 데다 모비스도 훌륭한 팀이다. 문제 될 것은 없다. 3년 간 함께 했던 삼성에 남는다면 좋겠지만 규정은 규정이니까. 모비스뿐 아니라 어느 팀이라도 불러준다면 가서 최대한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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