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만 3년째를 한국에서 맞는다. 시기적으로 자기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지난해 로케이션 이상으로 공이 한가운데로 몰리며 장타 허용이 많았던 베테랑 우완. 그러나 감독은 구위의 현저한 저하 현상이 없었고 제대로 된 구위를 뽐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매력을 느꼈다. 두산 베어스의 2012시즌 첫 번째 마무리 투수가 될 스콧 프록터(35)가 과연 2008년 임창용(36. 야쿠르트)의 전례를 보여줄 것인가.
두산은 지난 11일 더스틴 니퍼트(31)와 짝을 이룰 새 외국인 투수로 프록터를 선택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 5만 달러와 연봉 25만 달러로 총액 30만 달러. 뉴욕 양키스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조 토레 감독의 남자로도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프록터는 1998년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며 2004년 양키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프록터는 주로 셋업맨으로 활동했다. 특히 2006년~2007년 프록터는 아메리칸리그 최다경기에 등판하며 양키스의 선발투수들과 마무리 리베라를 이어주는 필승 계투조로 활약했고 통산 307경기에 출장해 18승 1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78을 기록했다. 2006시즌에는 중간계투로 102⅔이닝을 소화하며 '마당쇠' 노릇을 했다.
프록터는 150km 초중반의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줄 아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애틀랜타-양키스서 공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두산은 프록터의 메이저리그 경험과 위기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경기운영능력, 결정적인 순간에 변화구로도 유리한 카운트를 잡을 줄 아는 능력을 높이 평가해 계약했다.
특히 김진욱 감독의 프록터 선택 배경 중 하나가 재미있다. 프록터는 지난 2009년 3월 양키스서의 혹사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재활 기간만 해도 최소 1년 이상이 걸리는 수술로 투수 생명을 걸었던 프록터는 2011시즌 손쉽게 150km 이상을 기록했으나 장타 허용이 많았다. MLB.COM서 프록터의 가장 최근 투구 영상은 에반 롱고리아(탬파베이)에게 95마일(약 152km) 몸쪽 직구를 던졌다가 좌월 끝내기포를 내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프록터가 빠른 공의 위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과 팔꿈치 수술 후 3년이 지난 시즌이라는 점에서 '코리안 드림' 가능성을 높게 봤다. "지난해처럼 한복판에 몰리는 공이 나온다면 실패하겠지요"라는 것만이 김 감독이 보는 프록터에 대한 불안요소였다.
"수술 전력을 오히려 더 좋게 봤다. 재활이 오래 걸리는 수술인 만큼 그 효과는 단시간에 나오지 않는다. 풍부한 경험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잃은 것이 갑작스러운 구위 저하의 이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한다. 한국 무대에서 제 로케이션과 구위를 보여줄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실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후 3번째 시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케이스를 한국 투수 중에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해태-삼성에서 선발-마무리로 종횡무진한 뒤 2004시즌 삼성 소속으로 36세이브를 올렸으나 시즌 막판 구위 저하로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홀대받았던 임창용이 주인공. 임창용은 2005시즌 5승 8패 3홀드 평균자책점 6.50으로 시즌을 마친 뒤 그해 10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떨어져나간 뼛조각이 인대 손상을 일으키며 수술이 불가피했다.
2006년 단 한 경기 출장에 그쳤던 임창용은 2007시즌에도 40경기 5승 7패 3홀드 평균자책점 5.70에 그친 뒤 이듬해 일본 야쿠르트에 건너갔다. 예전같은 무브먼트를 보여주지 못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던 만큼 임창용의 2008시즌 연봉은 일본 내 외국인 선수 최저급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임창용은 특유의 뱀직구를 뽐내며 일약 야쿠르트 수호신으로 우뚝 섰다. 안방인 도쿄 진구구장의 스피드 계측이 후한 편이기는 했으나 160km도 스피드건에 새길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4시즌 동안 일본 통산 128세이브를 올린 임창용의 올해 연봉은 무려 3억6000만엔(약 54억원)에 달한다. 임창용은 수술 후 2~3년 여가 지난 뒤 전성 시절보다 더욱 뛰어난 구위를 선보이며 제2의 전성기를 일본에서 보내고 있다.
오랫동안 투수-재활 코치로 재임했던 김 감독은 임창용의 전례를 놓치지 않았다. 만약 뉴욕 메츠 시절 서재응(KIA)처럼 파워피처에서 예리한 제구력을 뽐내는 기교파로 변신한 경우였다면 김 감독은 프록터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프록터가 나이가 있음에도 제 구위를 잃지 않았음을 주목했다.
"많은 나이에도 구위를 잃지 않았다. 새 인대를 장착한 적응기였음에도 말이다. 프록터가 한국 땅을 밟는 시기는 수술 후 만 3년째 되는 해다. 구위 저하 현상이 없는 만큼 제 본연의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마운드에서 싸움닭 같은 근성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유연한 사고로 팀 동료들과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미존 서저리를 단순하게 '구속이 빨라지는 수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이 수술을 받고도 재기하지 못한 채 야구를 접은 케이스도 있기 때문.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면 프록터의 행보는 얼핏 임창용의 2008년 초와도 닮아 있다. 프록터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의 또다른 수혜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두산의 실패한 외국인 투수로 전락할 것인가.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