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어깨에 있던 벽돌 많이 내려놨다"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2.01.13 09: 17

그간 스스로 날이 이 서 있었다고도 말했다. "(작품 속에서)활짝 웃는 모습을 못 봤던 것 같다"라는 말에 "맞다. 정말 그랬지"라며 웃어보인다. 최근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부당거래', '모비딕'에서 검객, 경찰, 기자로 분해 현실 생활과는 조금 동떨어져 어두운 사회를 대변했던 그가 유머넘치고 따뜻한 사랑스러운 아저씨로 돌아왔다. 영화 '댄싱퀸'의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배우 황정민이다.
"난 이 작품을 하면서 감동에 대한 부분에는 사실 신경을 안 썼어요. 코미디 영화로 키득키득 웃으면서 했고, 관객들 역시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전당 대회신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이 내심 놀라웠어요. 그냥 연기할 때는 내 솔직한 심정만 드러내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극중 황정민은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의의 사도는 아니다. 지하철 사고를 당할 뻔한 시민을 구하는 것도 '뒤에서 누가 밀어서' 우연하게 이뤄졌고, 전세값을 올려줘야하는 형편에서 장인에게 기대는 뻔뻔한 모습도 보인다. 변호사이지만 한 번에 붙은 천재형은 아니다. 7전 8기 끝에 붙은 오뚝이 근성을 지녔고, 변호사이지만 돈도 잘 못 벌어 아내 엄정화의 구박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황정민의 특유의 밝은 에너지에서 측은지심이 아닌 긍정적인 희망을 본다.

순진한 황정민은 그의 캐릭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서울 특별시'도 사투리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그가 서울시장 후보로 TV 토론회에서 닳고 닳은 정치인들과 한판 배틀을 벌인다.
황정민이란 호감형 캐릭터를 스트린에서 보는 것이 좋았다는 말에 그는 "왜 좋았냐"라고 반문한다.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좋다는 말에 "남 같지 않은 느낌, 살갑게 느껴지는 캐릭터라서 보시는 분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 하나 드는 개인적인 생각은 내 스스로 어깨에 몸에 힘이 많이 빠졌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나이가 40대가 되니 내가 하는 일이나 작품에 좀 더 여유있게 다가가는 시선이 생겼어요. 역할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죠. 30대에는 내가 작업할 때 현장에 사람들을 못 오게 했어요. 감독들이 보러 오는 것도 싫어했죠. 기자나 가족도 마찬가지고. 제 집중이 흐트러질까봐요. 그런 것들이 변했죠. 이제는 사람들을 다 오게해요. 저에게는 굉장히 큰 변화죠. 애랑 집사람이랑 다 와서 보고 친구들도 보러 오고 스태프들에게도 애인이랑 오라고 해요. 사실 그렇게 된 게 얼마 안됐어요. 그게 나한테는 참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통해 어깨에 있는 벽돌이 하나씩 내려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왜 이제서야 느낄까란 생각도 들고요."
이런 바탕에는 그가 30대에 치열하게 연기했던 시간이 밑바탕에 깔려져 있다. "30대에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정말 치열하게 했어요. 초밥 장사 하는 사람이 초밥을 잘 만들 듯이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무던히 애 썼던 게 지금 또 다른 여유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된 것 같아요. 치열하게 살아온 것 때문에 오는 여유로움이 있죠."
그는 '댄싱퀸'이 만약 30세에 왔었으면 안 했을 것라고 말했다. '나 말고도 충분히 다른 사람이 할텐데'란 생각이 들었을 거라고.
하지만 "파티 즐기듯이 하니까 너무 너무 해피해지고 일하는 게 즐겁고 다음은 어떻게 즐기면서 할까 궁금증도 생기더라"며 특유의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실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그다. 좋아하는 로맨틱코미디 영화 얘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노팅힐', '프리티 우먼' 같은 영화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러브 액츄얼리' 이후 그 같은 부류의 잘 만들어진 작품을 거의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그런 그가 '댄싱퀸'을 만나자 한 마디로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영화에서 웃음과 눈물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황정민이다. 특히 "소는 누가 키워" 등의 재치 넘치는 대사는 영화에 쫄깃쫄깃한 재미를 더한다. 대부분이 애드리브라고.
"대본에는 상황과 대사만 있고, 거의 대부분이 애드리브였죠. 정화 씨가 봉사활동을 가는 장면에서 양봉장 대사나 '소는 누가 키워', 정민이 힘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정화에게 '춤 한 번 춰봐'라고 말하는 장면 등 모두 애드리브에요. 사전에 정확하게 상대배우와 얘기를 하고, 어떻게 할 건지 조절을 하죠. 그런 고무줄 같은 유연함이 있으려면 상대배우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엄정화 씨는 정말 최고에요. 엄정화 씨 덕에 즐겁게 놀면서 연기할 수 있었죠." 
영화 촬영 시에는 배우들보다는 스태프들이 웃어서 NG를 많이 냈단다. 그런 것에 감사하다는 황정민이다. "스태프들이 집중한다는 거거든요. 그런게 너무 행복해요. 스태프들과 같이 가고 있는 것을 느끼죠. 누구는 여기서 뭐 하고 저기서 저것 하고 이런게 아니라 함께 집중하고 일해 나가면 한 배를 타고 간다는 느낌을 실감해요. 그런 것들이 사실 감사하고요."
전설처럼 회자되는 '밥상 소감'도 그렇고, 스태프 사랑으로 유명한 그다. 최근에는 "VIP 시사회의 주인공은 스태프들이다"며 스태프들의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스태프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도. 황정민은 영화는 '과정'이라 힘주어 말했다.
"물론 결과로 많이 따지지만, 과정이 그 만큼 중요한 것이 영화에요. 과정이 좋으면 분명히 결과도 좋게 된다는 소신이 있어요. 그 만큼 과정이 중요한 거고. 사실 영화를 처음 시작하는 막내부터 다 같이 무대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야 모르지만 그 친구들은 인생에 있어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로에 서 있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 친구들 부모님들에게 '아, 네가 저거 할라고 그랬구나'라고 인정받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중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저희 팀들이 가족들한테 인정받는 것. 그게 행복한 거잖아요."
'댄싱퀸'은 황정민, 엄정화, 두 주연배우가 실명으로 등장한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그 만큼 부담도 컸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해서 '안하면 안돼? 불편해' 이랬는데 주변에서 되게 신선하다고 하니 '아 그래?'라는 생각이 들었죠. 왜 배우는 또 다른 인물, 또 다르 이름을 보여주고 황정민은 최대한 안 보이려고 하는 게 최종 목표잖아요. 그런데 내 이름으로 연기하니 홀딱 벗겨진 느낌이 들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들도 황정민이 시장이 된다는 이야기를 제 이름으로 등장해 더 벽 없이 받아주시는 것 같고요"
불쌍한 인물에서부터 비열한 인물까지. 말그대로 '천의 얼굴'인 황정민에게 그간의 작품들에서 본인과 가장 비슷한 인물을 꼽아달라고 하니 주저없이 '댄싱퀸'을 꼽았다. 그리고 배우로서 본인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작품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고, 어떤 그림이든 새롭게 그릴 수 있는 하얀 스케치북 같은 상태가 금세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작품을 했지만 늘 황정민이란 배우가 그 속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런 힘이 가장 컸다. 그는 이를 '신기루처럼 휴지에 불이 붙으면 금방 타버리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황정민에게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아내가 자신의 꿈을 위해 뭔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면 남편으로서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극단적인 예로 아내가 살림을 접고 1년 동안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고 동의를 구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줄 거냐고.
"'콜'이죠. 평생 같이 사는 상대방인데, 믿어주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줘야죠. 사실 영화보다 어렵고 노력해야 하는 게 부부관계에요. 나는 나의 삶이 있고, 상대방은 상대방의 삶이 있듯이 각자의 삶을 존중해줘야 해요. 제게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한 친구에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게 해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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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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