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다투고 살다간 지쳐. 습관이 돼버린 경쟁에 미쳐. 똑같은 틀 안에 갇혀. 아무도 모르게 묻혀 (중략) 링가 링가 링. 노래나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살고 싶어."
혼성그룹 써니힐이 지난 13일 발표한 신곡 '베짱이 찬가'의 가사 중 일부다. 둥글둥글하게 살다가는 경쟁에 뒤쳐져 낙오되고 마는 현대인들의 처지를 '개미와 베짱이'에 비유해 노래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딱 맞춰진 규율에 맞춰 표정 없이 일만 하는 개미들이 등장한다. 이 노래에 대한 부연설명이 따로 없어도,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노래라는 걸 알 수 있다.
대중가요가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의 삶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도가니' 등으로 사회부조리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TV가 KBS '개그콘서트' 등으로 시사 패러디에 매진하는 동안, 가요는 현대인들을 신나게 응원하는 방식으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시대 반영은 아이돌 음악이 좀 더 빨랐다. 슈퍼주니어가 지난해 최고 앨범 판매량을 기록, 2011 골든디스크 음반대상을 차지한 5집 타이틀곡 '미스터 심플'은 걱정 근심 많은 현대인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유쾌한 이미지의 멤버들은 무대에 올라 "성적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그런 거지 뭐. 흥. 실적이 올랐다가 떨어졌다 그런 때도 있지. 어쩌면 괜찮아. 쉬어 가는 것도 좋아"라고 노래했다. 안무도 어깨에 힘을 주는 동작과 스트레스를 툭툭 털어내는 손 동작에 포인트를 줬다.
리더 이특은 당시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힘든 것 같다. '미스터 심플'을 들으시고, 걱정과 근심을 잠시나마 털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미스터 심플'의 기획 취지를 밝혔다. 그는 대학등록금 문제, 물가 급등, 취업난 등 사회 이슈들을 두루 짚으며 "요즘 신문 기사를 읽기 무섭기도 하다. 삶의 굴곡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안타깝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소녀시대에게 2011 골든디스크 음원대상을 안겨준 3집 타이틀곡 '더 보이즈'도 같은 맥락이다. '더 보이즈'는 움츠러든 남성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멤버들은 터프한 표정으로 "순리에 맞춰 사는 것, 넌 길들여져 버렸니. 괜찮니. 암담한 세상이 그댈 주눅들게 만드니. 그냥 볼 수가 없어 난. 부딪히고 깨져도 몇 번이고 일어나. 날카롭게 멋지게 일을 내고야 말던 네 야성을 보여줘"라고 노래했다.
한국어와 영어 두가지 버전으로 공개된 이 곡은, 한국어 가사가 좀 더 '세다'. 멤버 써니는 "가사가 중의적이다. 남자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단순한 느낌보다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우리가 이끌어갈게, 라고 말하는 터프한 이미지를 줄 수도 있다. 힘내고, 더 정신차려라 하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남녀 구분 없이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 참가밴드인 버스커버스커가 엠넷 '슈퍼스타K3' 결승 무대에서 꺼내든 것도 피곤에 지친 서울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들은 베짱이처럼 기타를 메고 무대에 올라 "아가씨 어디가? 클럽가요? 아니요. 오늘도 야근해요. 인생이 뭐 길래. 사는게 뭐길래. 완전 Tired Tonight. 꺼지지 않는 이 밤의 불빛, 오, 서울 사람들"이라고 노래했다. 심사위원 이승철은 "시대를 읽어내는 게 천재적"이라고 극찬했고, 이후 발매된 음원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대중가요가 이같이 현대인들의 각박한 삶을 푸념하고, 신나게 응원하며 끝을 내는 것은 노래 특성상 '응원'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아동 성범죄 사건을 잘못 다뤄 큰 논란을 야기한 알리의 신곡 '나영이' 사건과 같이, 노래의 한정된 가사 안에 심각한 문제제기나 사회고발의 내용을 온전히 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 우울한 곡은 아무래도 신나는 노래에 비해 덜 팔리므로, 타이틀곡으로 선정하기엔 부담이 크다.
한 가요관계자는 "대중가요는 대중이 가장 필요로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찰하므로, 대다수의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현대인의 팍팍한 삶은 계속해서 대중가요의 단골 메뉴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만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 치명적인 대중 가수의 입장에서 보다 더 구체적이고 예민한 이야기를 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신 응원가 뿐만 아니라, 일반 노래 전반에 자연스럽게 '정서'가 녹아들 가능성이 높다. 한 뮤지션은 "뮤지션마다 각자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으므로 모두가 시사적인 노래를 하진 않게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현대인의 삶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을 땐 아무래도 다른 사랑 노래의 정서에도 영향은 미칠 것 같다. 오히려 굽히지 않고 희망만 노래하는 것도 암울한 시대상에 작사가가 반응하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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